6월 11일 방송분

작년까지만 해도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면, "따~악~ 하루만이라도 혼자서 조용히 지내고 싶다"였습니다. 남편보다 덩치가 두 배나 큰... 아들 둘에, 고창에서 유학 온 조카, 그리고 남편까지.. 남자들만 득실대는 우리 집은 일단 현관을 들어서면서부터 표가 났죠. 230밀리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제 신발은 평균 270밀리인 남자들의 신발에 짓밟히기 일쑤였구요. 깔끔함을 유지해도 칙칙한 냄새가 항공 모함 같은 신발에서 뿜어져 나오는데...이겨낼 재간이 없더군요. 딱히 내놓을 만한 음식이 없음에도 무엇이든 만들어 놓기만 하면, 뚝딱 하면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데... 만드는 과정에서 부지런히 챙겨 먹지 않으면 음식 구경 하기도 힘들 정도였죠. 또 하루에 몇 벌씩 쌓이는 옷가지와 양말들.. 베란다 천장에 붙은 빨래건조대는 물론 바닥에 세워두는 건조대까지 동원하는데도 모자라 늘 16층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은 빨래감들로 포기해야만 했죠.. 그런데 지난 3월 말...대학 2학년이던 조카가 군입 대를 했습니다. 게다가 올해 대학진학에 실패했던 큰아들은 재수를 시작하면서 기숙학원으로 옮기게 됐구요. 고3인 막내도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됐죠.. 순식간에 이뤄진 일들... 좀 놀랍긴 했지만, 제 소원이 이뤄지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갑자기 남편마저 해외 장기 출장을 떠나게 됐죠.. 이제는 더 이상 칙칙한 냄새 풀풀 풍기는 항공모함 같은 남자들의 신발에 제 신발이 짓밟히지 않구요. 바깥 풍경을 가리던 빨래 줄도 찾아 볼 수 없게 됐으며, 만들어 놓기 무섭게 사라지던 음식도 말라비틀어지기 일쑤입니다. 한 사람도 아니고, 갑자기 네 남자가 모두 떠나고 난 후 달라진 풍경이죠.. '있을 때 잘 할 걸...'하는 후회와 함께.... '출장 다녀오면, 시험 끝나고 돌아오면, 휴가 나오면...정말 잔소리 안 하고 잘 해 줘야지..'하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소원이 이뤄졌는데...북적대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요?..... 오늘 참여해주신 전주 평화동 이경선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