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만 오늘 저는 사십대 중반을 넘긴 맞벌이 엄마에게 때로는 분노와 절망감을, 인생무상을 안겨주지만 그 모든것들을 한방에 날려보냈던 딸 자영이와 우리 가족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난 금요일에 딸아이가 소풍을 간다며 모양주먹밥 6인분을 준비해달라 했어요. 속으로는 맞벌이 하는 엄마 사정좀 봐주지 친구들 도시락까지 맡아오다니 참 철없고 야속타 생각했지만 아침일찍 일어나 주먹밥을 싸주었지요. 그때까진 저나 딸아이 모두 기분이 좋았는데... 딸아이가 입고 갈 옷을 골라달라하며 두벌의 옷을 내 앞에 내밀었어요. 무엇을 입은들 예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둘다 예뻐서 결정하기 힘들다 했고 딸아이는 한가지를 추천해달라 하며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은 언성이 높아져 심한 말까지 나와 버렸어요. 딸아이는 "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거짓말이야" 라고 하며 토라져 나가버렸어요. 참! 내 어이가 없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일어나 친구도시락까지 준비해준 엄마에게 매몰차게 등돌리고 나가는 딸을 보며 넋나간 사람처럼 출근길에 나섰지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그다지 슬픈 노래도 아니었는데 왜그리 눈물이 나는지... 하루 종일 화가나고 슬프고, 공연한 남편과 아들까지 다 소용없단 생각이 들었지요. 그날 저녁은 아무 말없이 우울하게 지나고 마침 그 다음날이 제 생일이었는데 아침 일찍 가족들을 뒤로 하고 혼자 집을 나와 휴대폰도 잠재우고 하루종일 방황했지요 저녁이 다되어 집에 들어가는데 아파트 통로 유리문에 " 권미정 여사님! 생일축하해요"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는거예요. 틀림없이 딸아이가 한것이려니 생각하니 오히려 부화가 치밀어 떼어서 가방에 구겨넣었지요. " 내가 이러면 풀어질 줄 알고? 병주고 약주니?" 하며 말이예요. 그런데 한계단 한계단 4층 우리집 현관문에 이를때까지 " 엄마 사랑해요" " 여보 생일축하해" " 엄마는 우리의 보물" 등이 적힌 메모지가 아파트 벽과 계단에 도배하듯이 빽빽하게 붙어있는거예요.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폭죽이 터지고 캄캄한 거실에서 촛물켜진 케익을 들고 남편, 딸, 아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더라구요. 참 감동스러웠지요. 어색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 평소에 잘해야지 나는 이런 이벤트보다 평소에 고분고분한게 좋아" 라고 말하며 안방으로 들어서려는데 그런 저를 셋이서 껴안고 " 사랑해요! 미안해요!"라고 하는거예요. 그 바람에 저는 그만 항복하고 말았지요. 새삼 말하지 않아도 이 모든 것이 딸아이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는것을 저는 알지요. 가족들이 준비한 선물이 있었는데 엊그제 무심결에 썬크림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저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아들이 준비한 썬크림과, 딸아이가 준비한 휴대폰 줄, 남편이 준비한 값비싼 수입속옷이었어요. 제가 너무 비싼 속옷은 교환하는게 좋겠다 했더니 " 엄마가 그럴까봐 걱정했더니 역시 " 하며 언제 그런 속옷입어보겠냐며 딸아이가 한사코 말리는 거예요 그러나 저는 딸아이를 앞세워 속옷매장에 교환하러 갔고 저렴한 상품으로 교환한 후 나머지 돈은 환불을 받았답니다. 비록 값비싼 수입속옷은 가지지 않았지만 속옷매장의 주인이 하신 말 한마디에 그동안 딸과 가족들에게 서운했던 모든것들이 한방에 날아가버렸지요 " 이렇게 온 가족들에게 큰 사랑를 받는 안주인이 누굴까 궁금하고 보고 싶었는데 바로 아주머니셨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참 부럽네요" 그날 딸의 데이트 신청으로 함께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답니다. 딸과 손을 잡고 집에 돌아오며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어요 " 이렇게 이쁜 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난 행복한 엄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