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등학교때 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아버지는 사업에 한번 실패하시고 삶의 의욕을 많이 잃으셨던것 같습니다. 거의 매일을 술을 드시고 집에 오셨고, 이어지는 아버지의 반복적인 인생얘기 와 어머니의 눈물섞인 긴 한숨~~
그 공간과 그 현실이, 한참 감수성 예민할 그 나이에는 벗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집에서 기타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버지는 얼큰이 술에 취해 들어오셨고 , 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싫어 방에서 나가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내 아버지는 내 방문을 열었고 난 못이긴척 "가서 주무세요"라고 퉁명하게 말하고는 눈낄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다른때와는 달리 " 어 ! 기타가 있네" 하시며 제 옆으로 오시는 거였습니다. 그리고는 기타를 한번 줘보라고 하셨습니다.
난 아버지가 주사를 부리는 것 같아서 거절했는데.. 아버지는 반 강제로 기타를 뺏으셨습니다. 전 약간의 원망과 짜증섞인 눈빛으로 아버지를 올려다 보았고.. 아버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기타줄을 팅팅 튕겨보시더니 이내 아리랑을 아주 구슬프게 연주 하셨습니다.
내 인생에 딱 한번 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아버지의 기타연주...
아버지는 딱 한곡만 연주하시고 나가시며..."그때가 좋았는데..." 라는 혼잣말을 하셨습니다.
전 한참동안이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등 멍했습니다.그리고 이내
이유모를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버지 에게도 청춘이 있었구나!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고 밤을 세웠던 뜨거운 청춘이 아버지 에게도 있었구나!아버지도 나처럼 미래를 고민하고 한 여자 때문에 가슴아파하던 그 시절이 있으셨구나!"
전 한번도 그 전에는 아버지를 , 내 아버지가 아닌 모진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것 입니다. 아버지의 구슬픈 아리랑연주는
내게 잊고살던 아버지의 자아를 느낄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걸 느낀 순간, 아버지가 우리 가족때문에 버리셔야 했던 청춘의 뜨거움이 , 그 희생이 너무 가슴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제 나이도 31 , 아버지를 조금은 느낄수 있는 나이
오늘은 왠지 아리랑을 연주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기억이 납니다.
모닝쇼 애청자들도 오늘 하루쯤은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 보았으면 합니다. 아버지로써 기꺼이 버려왔던 자유와 청춘을 오늘 하루쯤은 고맙다는 말로 조금은 보상해 드리길 바랍니다.
익산에서 조희준 (010 3312 0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