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 방송분

며칠 전, 친정 어머니의 고희연이었습니다. 흔히들 이런 때, 장성한 자식들이 친지나 친구분들 초대해 잔치를 벌이는데요.. 우리 남매는 급구 거절하는 어머니를 그저,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칠순이 되신 어머니, 늘 농사일과 조그만 식당 운영에 하루가 짧기만 했죠.. 실향민이었던 아버지와 첫 대면 후 바로 결혼...큰댁에서 시부모 시집살이가 아닌 매서운 동서 시집살이를 하면서 신혼을 보냈고.....몇 해가 지나, 숟가락과 젓가락 두벌을 가지고 분가하셨다고 합니다.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살림꾼이셨던 어머니..저를 태중에 두고, 새로 살집을 아버지와 수리하느라 무리한 탓인지 예정일보다 일찍, 너무 작은 아이를 낳으셨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제게, 사람 구실하는 게 신통하다며 말씀하시곤 하죠. 지금까지 늘 어머니 맘을 아프게 하는 건, 제법 자란 아들을 병으로 잃은 것이랍니다.. 그때는 너무도 무지해 생떼 같은 자식을 거짓말처럼 잃어버렸을 때 어머니는 십년은 늙으셨을 겁니다. 억척스레 마련한 논에서 늘 손발 못 쉬도록 일하셨던 어머니는 선산에 누워있는 한 평 짜리 오빠의 산소가 보이기에 제대로 발걸음도 하지 못하십니다. 자신보다 먼저 산에 누워있는 자식을 차마 보지 못하는 까닭이시겠죠. 흔히들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결코 묻히지 않는 절절한 그리움.. 그리고 함께 하지 못하는 서러움을 누가 대신 이해해 줄 수 있겠어요. 며칠 전에도 그랬습니다. 자식 앞세운 게 어머니의 죄라도 되는 양, 칠순.. 말도 못 꺼내게 하시는 탓에 남동생의 집에서 조촐하게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죠.. 먼 거리를 차멀미하며 달려오신 어머니는 장남의 빈자리에 목이 메어도 남은 자식들 마음 다칠까 넘어가지 않는 밥을 꾸역꾸역 넘기셨던 겁니다. 그리고는 눈물을 떨구셨죠..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던 자식들도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제 그만 마음의 짐을 놓고, 조금은 편하게 지내시길 소망해 봅니다. 지금도 당신 몸 돌보지 않는 어머니가,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큰딸은 늘 염려되고 불안하답니다.....어머니...제가 효도할 수 있도록 오래 오래 사세요.. 오늘 참여해주신 전주 인후동 정선아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