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방송분

며칠 전, 우연히 길 건너편에 서 있는 그녀를 보게 됐습니다.. 한동안 꿈속에서라도 한번 만나봤으면 하고 생각했던 그 사람.. 평소에 잘 다니지 않던 그 길..업무 차 나갔던 곳에서 늦가을 찬란한 햇살만큼이나 밝은 미소를 띈 그녀를 보게 된 거죠... 차를 대충 정차하고, 한참이나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봤습니다... 밝게 웃던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즐겨 입던 옷차림도..머리 모양도.... 그런데 그녀 곁에는 다른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당연한 일이지 싶으면서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고 있는 그녀를 보며 옛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2002년..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떠들썩하던 그 당시...우린 사귄지 천 일이 조금 넘은 연인이었죠.. 저보다 세 살 위였던 그녀는 뭐든 제게 맞춰주려 노력했고, 사려심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저희 아버지께서 위암 판정을 받고 두 차례의 수술을 하신 상태로... 앞날을 예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절망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그녀는 유일한 희망의 통로가 되어줬지만..한편으론 늘 미안한 마음이었죠.. 그 때, 부유하지 못한 집안 살림에.. 병상에 계신 부모님..게다가 모든 짐을 통감해야 했던 장남인 저를 그녀의 부모님이 달갑게 생각하실 리 없었죠.. 당연히 큰 반대에 부딪치게 됐습니다...그녀 부모님께서 '내 딸을 데려가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돌아 보라' 고 하시더군요.. 그 당시, 제가 감당해낼 수 있었던 무게는 딱 그 만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습니다...그땐 힘들었지만 그게 참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멋진 놈이라 생각하며 대견해했죠. 하지만 얼마 후, 그녀가 많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하지만 차마 그녀에게 가지 못하고 영영 숨어버렸던 4년이 그렇게 흘렀네요.. 그 동안 절망적이던 아버지는 산책도 하실만큼 몸이 많이 호전되셨고, 저 역시 이해심많고 정이 깊은 한 여자를 반쪽으로 맞이했습니다..예상치 못한 만남에 잠시 애틋한 마음이 앞섰지만, 또 다른 사람곁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며 참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곁에서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산책도 하고, 제 피곤한 어깨를 두들겨줄 수 있는 착한 아내.. 그 사람을 위해서 현재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 겁니다.. 오늘 참여해주신 익산..김진명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