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나니,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그러더군요..
"아빠, 오늘이 할머니 생일인데, 할머니가 심심하시데...."
'아, 오늘이 장모님 생신이었나...'
아차 하는 순간,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게 보였죠..
아내가 한마디 대꾸 할 줄 알았는데.. 아무 말 없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저 멀리 대구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요 근래, 아내의 밝은 표정을 본 적이 없는 듯 합니다.
제 사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30년 넘게 살아온
고향과 어머니 품을 등지고
이곳으로 이사온 지도 두 달째 접어들고 있죠..
늘 하나뿐인 딸을 가까이 두고 사셨던 장모님...
급하게 이사가 결정 나고 준비를 하던 며칠 동안도
장모님은 김치를 담그고,
못쓰는 이불솜을 꺼내 베개를 만들고, 밑반찬을 준비하시며 ......
마치 딸을 막 시집보내는 것처럼 분주하셨죠..
"이제, 딸내미 먼데 이사 보내고 내는 우째 사노!!"
이웃들 조차 모녀의 헤어짐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죠..
장모님은 애써 웃으며 대꾸하셨지만,
저는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죠..
아내와 장모님이 함께 살아온 35년 가까이 인생여정 속에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고,
말로 일일이 열거 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수없이 많을 텐데 제가 왜 그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죠....
바쁘다는 핑계로 귀동냥으로만 소식을 들을 뿐,
아직 직접 전화 한번 드리지 못했었는데요..
결국 그렇게 생신도 깜빡 잊고 말았죠..
그 허전함과 서운함을 대신해 장모님은 손녀딸에게
심심하단 표현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 전화부터 드렸죠.
"장모니~~임"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를 부리니 늘 그랬던 것처럼
"아이고, 우리 김서방!!..." 하시더군요.
아니라 하시지만 먼 타국으로 장남 보내고,
곁에 있던 딸마저 멀리 보내고 나니
무척 쓸쓸하신가봅니다.
아내도 장모님도 모두 빨리 이 생활에 적응해야 할텐데 걱정이네요.
아무쪼록 우리 장모님...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십시오..
익산 모현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