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축구공

친구들과 축구 한다고 나간 아이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둠이 성글게 내리기 시작할 무렵 기다림에 지친 전 아이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다행인지 집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아이를 봅니다. 붉게 상기된 얼굴은 금방 달리기를 한 것 같습니다. 땀에 젖어 있는 아이의 옷을 보다가 아이의 눈을 보니, 눈에도 물기가 어려 있더군요. 혼내 주려는 제 마음은 금방 꼬리를 내립니다. "컴컴해서 축구하면 공도 안 보이겠다. 축구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니?" "아녜요. 축구하다가 6학년 형들이 내 축구공을 잘못 가지고 가서 한참을 찾았어요." "그래서 너 울었니? 축구공이 두 개나 더 있는데, 그걸로 하면 되지." "....." 그 때 까지만 해도 전 축구공은 새 것보다 헌 것이 더 잘 차지나 보다 생각을 했었답니다. 월드컵이 열려서 두 개나 얻어 놓은 축구공은 아끼는 것일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가 제게 묻습니다. "엄마, 아까 제가 잃어 버렸던 축구공 무슨 축구공인지 아세요?" "축구공이 축구공이지, 무슨 축구공도 있어?" "일곱 살 때 할머니가 사 주신 거잖아요." 그제야 전 아이의 마음을 읽습니다. 맞벌이를 하느라, 2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이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답니다. 할머니한테 걸음마를 배우고, 소변 가리는 것을 배우고, 세발자전거 타는 걸 배우고, 베개 하나를 나눠서 베고, 엄마인 제가 보기에 샘날 정도로 할머니와의 사이가 좋았지요.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밥을 먹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였던 아이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할머니 생각이 덜 나나 했는데 이젠 할머니 사랑을 마음속으로 품었나 봅니다. 7살 처음 할머니께 축구공을 선물 받았던 기쁨과 할머니와 함께 축구를 하던 추억을 찾아 그 저녁 내내 온 동네를 뛰어다녔을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오늘 밤 꿈속에서 아이는 할머니와 만나 축구를 할 지 모르겠습니다. - 김 선 미 - 어린 마음에도 다 보였겠지요. 할머니의 찐한 사랑. 그 사랑 고이 받고 마음속에 품은 아이는 그만큼 사랑 많은 어른이 되겠지요. 이렇게 사랑은 되물림됩니다. 이렇게 세상은 사랑으로 물들어갑니다. - 할머니, 그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