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어느 신문에 실린 글을 읽고 오려두었던 내용인데 다시한번 읽어보니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네요.
한번쯤은 있을법한 이야기가 제 가슴을 더욱 아리게 합니다.
철없던 초등학교 시절. 그때 나의 어머니는 어머니의 이름보다는 붕어빵 아주머니로 더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학교로 가는 길목 어귀에서 허름한 포장마차를 열고 오뎅과 떡볶이 그리고 붕어빵을 구우며 바쁘게 살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창피하고 부끄럽게만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까 걱정돼 아침에도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학교에 갔으며 하교 때도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야 혼자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또 어머니가 장사하는 포장마차 앞을 지날 때면 혹시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을까 싶어 뒤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뜀박질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운동회가 다가오자 다른 친구들은 신이 나서 들떠 있는데 나는 어머니가 따라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앞섰습니다. 솔직히 나는 어머니가 학교에 오지 않기를 은근히 바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운동회 전날도 어머니께서 운동회에 대해 별 말씀이 없으시길래 안도의 함숨을 내쉬며 그대로 잠들어 버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자다가 목이 말라 부엌으로 들어간 나는 도마위에 가지런히 놓인 김밥 재료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어머니가 운동회에 오실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나는 목마름도 잊은채 안방 쪽을 바라보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김밥재료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태연한 척 부엌으로 들어간 나는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도시락에 가지런히 쌓인 김밥이 한쪽에 놓여 있었고, 그 옆에서 아버지가 낡고 헤어진 일기장을 품에 꼭 안은채 잠들어 계셨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아버지를 깨웠더니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내게 그 낡은 일기장을 건네주셨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일기장을 펼쳤을 때 나는 낯익은 어머니의 글씨에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어젯밤 늦게 김밥을 만드시던 어머니는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잠깐 동안 부엌구석에서 눈을 붙이고 계셨는데 그때 마침 내가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가 곁에 계신줄도 모르고......
어머니는 처음부터 나의 행동을 모두 보시고 복받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밤새 한없이 우셨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돈 삼만원을 꺼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엄마가 장사해서 번 돈의 전부란다. 엄마가 얼마나 네 운동회에 가고 싶어했는지 아니? 하지만 엄마는 운동회에 가는 걸 포기하고 새벽 일찍 장사 나가셨단다,"
나는 양쪽 뺨가득 훌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어머니의 포장마차를 향해 힘껏 달렸습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이젠 늘 어머니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 될게요!"........
전주평화동 김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