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노래를 위해서라면 결코 무대를 가리지 않습니다.
연주회의 절반 이상이 지방 공연이고 그것도 군민회관 건물 한 켠에 급조된 가설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태반이지만 한번도 마다하지 않고 강행하곤 했죠..
그 즈음 삶의 든든한 보루가 된 사건이 생겼습니다..
강원도 탄광촌 황지에서의 공연 날, 무대는 흠집이 많고 사무용 책상을 몇 개
붙여 놓은 정도였죠. 객석 역시 접었다 폈다 하는 철제 의자를 죽 늘어놓은 사이로
쥐들이 뛰어다녔지만, 그 날 다른 때와 달리 몹시 감동을 받았습니다.
객석 맨 앞자리에 브라스 밴드가 자리해 입장하자마자 일제히 팡파르를 울렸고,
청중들은 소박한 모습 그대로 크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 날, 공연장을 꽉 메운 청중들로 인해 가슴이 벅차 올라 성심 성의껏 노래부르는 동안
그들과 하나가 되었죠..
그런데 공연이 끝나자, 얼굴에 석탄 가루를 채 벗겨 내지 못한 한 광부가 무대 뒤편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땀으로 끈적거리는 제 손을 덥석 잡고는 눈물부터 흘렸죠..
"선생님 노래를 듣고 보니 노래는 참 좋은 거네요.
고등학교에 다니는 제 딸년이 노래부르는 대학교에 간다기에 시간 많은 풍각쟁이나
하는 짓이라고 뜯어 말렸는데,
이젠 제 딸이 노래를 부르겠다면 땅 밑 2천미터가 아니라 3천미터라도 내려가겠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름 없는 광부에게서 받은 찬사를 가장 소중하게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죠..
그로 인해 성악가로서의 희열을 느낀 동시에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음악의 길을 보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