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겐 오빠가 한명 있었습니다.
아빠이기도 엄마이기도 했던 그런 오빠였습니다.
어린시절 엄마의 가출, 아빠의 술주정...
너무도 힘든 그때, 오빠는 저의 전부였습니다.
비록 3살 차이였지만 오빠는
끼니를 위해 신문을 돌리곤 했습니다.
새벽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
오빠를 따라나서기도 많이 했습니다.
겨울 차디찬 바닥에서 잠을 자야할 때면
서로 부둥켜안고 많이도 울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정말 열심히 살아온 오빠는
대학합격 후 바로 군대에 입대했고
저 역시 3년이란 세월동안 외롭게
오빠를 기다리며 대학에 무사히 합격했습니다.
전역 후 오빠는 등록금 문제로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장이 자꾸 미루는 바람에
한 달 후에야 아르바이트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였던 그날 친구를 잠깐 만나고
오겠다던 오빠는 밤이 깊도록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2시경 경찰서에서 사고소식이 왔습니다.
병원에서 만난 오빠는 예전의 오빠가 아니었습니다.
머리를 누군가에게 흉기로 찔려 뇌사상태였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저는 오빠 옆에서
학을 접기 시작했습니다.
학 천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지요.
제발 오빠가 다시 일어나게 해달라고...
하지만 오빠는 열흘 만에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가슴이 찢어질 듯 한없이 울었습니다.
우리 오빠가 너무 가여워서, 분하고 원통해서...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오빠가 손에 꼭 쥐고 있던
피 묻은 수표 한 장. 그까짓 돈이 뭐라고...
이제 오빠를 보낸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직 오빠가 너무 그립습니다.
오빠도 저를 잊지 않았겠지요?
보고 싶습니다. 정말... 한번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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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산동에서
죄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