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를 돌며 야채를 파는 이동 야채가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배추가게 야채가 싱싱해 보여 여섯 포기를 산 후, 배달을 부탁했죠.. "동, 호수만 가르쳐 주세요. 갖다 드릴 테니까요. 염려 마시구요." "5동 415호예요..늦지 않게 보내주세요..." 아무 의심 없이 동, 호수를 가르쳐 주고는 배추 값을 지불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곧 갖다주마 하던 배추장수는 저물 녘이 되어도 오지 않았습니다. 마른하늘에선 난데없이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한 차례 퍼부었죠.. 비가 와서 늦으려니 하고 기다리던 중, 비가 그치고 밤이 되어도 배추 장수가 오지 않자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에휴, 그깟 돈 만 원에 양심을 팔다니... 어휴..." "뜨네기 장사꾼을 믿은 당신이 잘못이지. 그냥 잃어버린 셈 쳐요." 남편은 위로인지 책망인지 모를 소리로 내 심사를 건드렸고, 허탈해진 마음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은 볕이 좋아 빨래를 했습니다. 탈탈 털어서 베란다에 줄 맞추어 널고 있던 점심 무렵....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누구세요?" "저 혹시 어제 배추 사신 적 있으세요?" 얼른 문을 열었죠. 대문 앞에는 땀에 절은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어제 그 배추장수였습니다. 나는 반가운 마음보다 책망하는 마음이 앞서 따지듯 말했습니다. "네, 맞아요. 근데 왜 인제 오셨죠?" 배추장수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동, 호수를 적은 종이가 비에 젖어서... 다 번지고 맨 끝에 5자만 남았거든요." "그래서 이 단지 안, 5호란 5호는 다 돌아다니다 날이 어두워져서 그만...아유.. 이거 죄송합니다." 그는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했습니다. "어머나,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그는 이제부터 장사를 해야한다며 돌아섰고, 그런 그를 의심했던 게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전주 송천동의 김구희님이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