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이 입사한 김주임은 여러모로 경쟁상대가 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도 그는 부장님께 불려가 질책을 받았죠..
"자네, 대체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나! 어?"
"그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김주임은 변명조차 제대로 못하고 뒤통수만 긁적였습니다.
상사로부터 이런 저런 실수를 지적받기 일쑤였고, 그럴때면 남자다움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죠...또 늘, 부장님이 홧김에 던져 버린 서류를 주섬주섬 챙겨들곤 했죠.
"또야? 왜 저러고 사는지 원..."그 모습을 자주 지켜보던 사무실 직원들조차
초라한 그의 뒤에 대고 한두 마디씩 거들었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된 퉁 당하고 나서도
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쟁반 가득 커피를 뽑아들고 돌리기 시작하는 김주임..
"자, 커피타임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그를 한심하게 생각했습니다.
제 앞가림도 잘 못하는 주제에 무슨 잔정은 그리도 많은지, 잔업 걸린 후배들
치다꺼리를 하느라고 퇴근시간을 넘기는 일도 허다했죠.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휴직계를 냈습니다. 아내가 큰 병에 걸렸기 때문이었죠.
그는 작별을 아쉬워했지만, 대부분 직원들은 그가 회사를 그만둔다 해도
별로 달라지는 게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빈자리는 너무 큰 것이었습니다. 아침마다 마시던 향긋한 커피를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책상 위의 컵엔 얼룩이 남은 채 먼지만 쌓여 갔죠.
휴지통엔 휴지가 넘쳤고, 서류들은 뭐가 어디에 있는지 뒤죽박죽 됐으며,
사람들은 점점 짜증난 얼굴로 변해 갔습니다. 사무실에 가득하던 여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죠...
나는 문득 김주임이 뽑아다 주던 커피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그가 쓰던 빈 책상으로 다가가 보니, 책상 유리 밑에 작은 글 한 줄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내가 편할 때 누군가가 그 불편함을 견디고 있으며,
내가 조금 불편할 때 누군가는 편안해질 것이다....'조금 모자란 듯하지만 실은 늘 넘쳤던 동료.
김 주임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편안함을 주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