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낮, 집배원 강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맡은 구역은 사람 많고 정 많은 달동네였죠. 어느 날 허름한 집 앞에 종이 하나가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한 그는 무의식적으로 오토바이를 세운 뒤 그 종이를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수도계량기 검침용지였죠..그는 그 집 대문 틈에 용지를 끼우려다 말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죠. 지난 달 수도 사용량에 비해 무려 세배나 많은 숫자가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씨 좋고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그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 집 초인종을 눌렀죠.. 수도검침 용지를 내밀며, 수도관이 새는 것 같다는 집배원에게, 자식들을 다 출가시킨 뒤 외롭게 살던 할머니는 거동이 좀 불편하고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몇 분을 보살피며 살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대소변을 받아내고 빨래를 해대느라 수도요금이 많이 나왔던 것이지요. 다음날...그 허름한 집 대문 앞에 우편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멈춰섰습니다. 바로 집배원 강씨였죠. 그는 이런저런 말을 늘어 놓을 새도 없이 팔을 걷어부치고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를 거들었습니다. "아, 좀 쉬었다 하구려...젊은 사람이 기특도 하지.." "예, 할머니..내일 점심시간에 또 올게요.."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점심시간을 이용해 그 낡은 집에 도착한 강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대문 앞에 집배원 오토바이가 석 대나 서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낯익은 동료들이 그를 반겼습니다. "어이 강씨, 어서오게..자네가 점심시간마다 실종된다고 소문이 나서 뒤를 밟았었지.. 이런 일을 몰래 하나! 퇴근길엔 여직원들도 올걸세.." 집배원 강씨의 작은 사랑이 어느새 동료들까지 전염시긴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