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힘없는 40대 가장으로 구조조정 물살에 쓸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에선 아무런 내색도 할 수가 없습니다.
속이 타면 애꿎은 담배만 피워댈 뿐, 희망도 즐거움도 없었죠...
상사의 질책과 무거운 업무에 시달리고 아랫사람, 윗사람 눈치보며 이리저리
치이고 눌려서 그는 점점 작아져만 갔습니다.
그의 아내 역시 불행했습니다.
"휴~.... 또 적자야.."
구멍난 가계부가 싫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살림이 싫었고,
돈을 여유있게 쓸 수 없는 현실이 싫었습니다. 생각하면 가슴이 자꾸만 답답해져 갔습니다.
이렇게 살려고 결혼을 한 건 아닌데..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한땐 행복했었는데.. 이래저래 늘어가는 건 짜증과 주름살뿐, 짧은 대화조차도
부부의 식탁을 떠난 지 오래였습니다. 남편은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죠..
결혼기념일, 아침부터 토라져 얼굴을 붉히고 있는
아내에게 그는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당신, 나랑 어디 갈 데가 있어.."
아내는 기쁜 마음으로 남편을 따라 나섰습니다. 내심 아내는 백화점 쇼핑이나
근사한 외식을 기대했지만 그가 아내를 데려간 곳은 백화점도 레스토랑도 아니었습니다.
얼음집, 쌀집, 구멍가게가 죽 늘어서 있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곳은 부부가 신혼살림을 차리고 장밋빛 달콤한 꿈을 꾸던 달동네였습니다.
부부는 세 들어 살던 쪽방을 찾아갔습니다. 그 창 너머로 부부가 본 것은
초라한 밥상 앞에서도 배가 부르고 아이의 재롱만으로도 눈물나게 행복한
아내와 남편..바로 10년 전의 자신들이었습니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아내가 소매끝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첫 마음을 잊고 살았군요.."
"그래, 첫 마음..." 첫 마음, 그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