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방은 언제나 씁쓰름한 약 냄새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던 소녀는 항상 침대 옆으로 난,
커다란 창문을 통해 맞은 편 집을 바라보곤 했죠.
그 집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베란다에 놓인 화분을 가꾸는 데 시간을 보냈는데요.
할아버지가 가꾸는 화분에는 늘 싱싱한 꽃이 피어있었고,
그 꽃을 바라볼 때면 소녀도 저 꽃처럼 싱싱하게 빛나길 소망하게 됐죠.
하루는 할아버지께서 그 꽃을 가꾸기 위해 땀을 훔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고,
소녀는 어머니를 생각하게 됐습니다..그리고 몇 년 동안 병시중을 들어온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빨리 건강을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소녀는 약을 먹는데도 투정부리지 않았구요.
신경질적이던 전과는 달리 항상 밝은 웃음을 띠고, 삶에 강한 의욕을 갖게 됐죠.
그러던 어느 날 소녀가 뭔가를 골똘히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담고 있는 것을 본 어머니가,
"뭘 그리 쳐다보고 있니?"
"옆집 베란다에는 지지 않는 꽃이 있어요.
그건 할아버지께서 늘 제시간에 물을 주고 정성을 기울였기 때문이죠.."
저녁에 맛있게 구운 파이를 들고 옆집을 방문한 어머니는 할아버지께 그 꽃을
보여달라고 부탁했죠. 그런데 베란다로 나온 어머니는 많은 화초들 속에 피어 있는 꽃이
생화가 아니라 조화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습니다.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할아버지는 나직이 말씀하셨습니다.
"따님이 늘 이쪽 베란다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방 시들어 버리는
꽃을 보고 실망할 까 봐, 이렇게 조화를 심어 놓고 매일 물을 줬던 거죠..이건 비밀입니다.."
어머니는 한쪽 눈을 살짝 감아보이는 할아버지께 뭐라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지 몰라
그만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