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일본의 기쿠치 박사는 젊은시절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유학하던 때의 일이다. 당시 동양인이 외국에서 유학한다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라 기쿠치는 옥스퍼드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입학한 지 얼마 안되어 기쿠치는 학교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시험이 있을 때마다 항상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일로 영국학생들의 자존심은 푹 꺾어졌다. 기쿠치 다음으로 2등을 하고 있던 브라운이라는 영국 학생의 마음은 더욱 안타까웠다.
그러던 어느해 학기말 시험을 얼마 앞둔 날이었다. 기쿠치는 독감을 앓게 되어 학교를 몇일 쉬어야만 했다. 이 사실이 학교에 퍼지자 영국 학생들은 이 기회에 브라운이 1등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몹시 좋아하였다. 몇몇의 친구들은 브라운을 찾아가 그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브라운 잘해, 그 원숭이 같은 작은 녀석을 보기좋게 꺾어주라고!" 브라운은 싱긋 웃어보일 뿐이었다. 기말 시험날이었다. 기쿠치는 헬쓱해진 얼굴로 학교에 나왔다. 영국학생들의 비웃는 듯한 눈초리를 받으며 기쿠치는 시험을 치렀다. 며칠 뒤 학교 게시판에 성적이 발표되었다.
와글와글 모여있는 학생들 틈에서 누군가 실망스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런, 또 기쿠치가 1등이야!" 브라운이 1등을 할 것이라는 철석같은 믿음이 깨진 것이다. 그 때 기쿠치가 게시판 근처로 걸어왔다. 어안이 벙벙해진 영국학생들이 한 걸음 물러섰다. 기쿠치가 서투른 영어로 말했다.
"내가 병석에 있으면서도 수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브라운 덕분입니다. 브라운은 매일매일 그날의 강의를 가지고 내 방을 찾아와 교수님과 똑같은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영국 학생들은 아무도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