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사건을 당하고....

2년을 함께 생활한 학생들을 떠나보내는 77회 졸업식장에서, 옛 52회 졸업식의 추억과 앞으로 다가올 100회 졸업식장을 투영시켜보기도 했습니다. 많은 학부모님들께서 교실 뒷편에 서 계시는 가운데 상장수여도 하고 기념촬영도 흐뭇하게 마쳤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제가 껴안아 드려야 할 분도 계셨고 맘속으로 흘리는 눈물도 짧은 위로로 닦아드려야 하기도 했지요. 수시 합격한 학생들이 미리 납부한 모의고사비를 반납해 주려고 교무실에 돌아와 가방을 열어본 저는 너무도 황당했답니다. 아침에 요구르트 2월분 대금을 드리려고 가방을 연 이후, 진학실 문을 잠그고 졸업식장과 교실을 다녀온 1시간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진 수십만원의 돈!! 정말 흐뭇하고 행복한 아이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눈 직후인지라, 남의 지갑을 열어 표나지 않게 도둑질을 한 손이 쉽게 용서되지 않았습니다. 쉽게 보이지 않는 곳의 돈 있는 곳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이의 소행이기에 바로 112에 신고를 했고 지문검사를 의뢰했습니다. 2시간 정도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작성하고 흑연가루로 까맣게 변한 가방을 물로 닦아내는 동안 참으로 힘들 것 같은 경찰 업무를 피부로 느껴보았습니다. 생애 첫 경찰서에서의 몇시간이 다양한 각도에서의 생각을 하게 했지요. 물론 졸업식 직후 전직원 점심 회식자리에도 참석하지 못해 배도 몹시 고팠고, 3학년 담임 총무로서 11분 선생님과 기분좋은 마무리 모임도 가져야 했기에 못내 불미스런 일을 저지른 범인(?)을 쉽게 용서하기 어려웠답니다. 하지만 대낮부터 취객을 상대해야 하고 다양한 신고 민원을 만족스럽게 처리해줘야 하는 경찰의 책임이 너무 무거워보여 경찰행정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도 실제 몇시간이나마 경찰서 실습을 경험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느꼈고, 마침내 내 손을 벗어난 돈을 굳이 찾으려 하지 말아야 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댓가가 아닌 돈을 취해서 얼마나 요긴하게 사용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번 일로 인해 생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을 가슴으로 느끼고 계시는 경찰의 업무를 가중시켰고, 지난 1년을 학생들과 기쁨으로 맺고 싶었던 교사의 마음을 할퀴어 버렸음은, 범인의 양심에 오래도록 깊은 상처로 남아있게 될 것 같았습니다. 다시는 문잠그고 나가는 교무실에도 지갑을 두지 않아야하며, 자신의 부주의함으로 잃어버린 일에 맘 상해 하지 않아야 하겠지요. 지난 1년간 토요일 밤, 일요일 저녁까지 자율학습하며, 틈틈이 모아둔 학년회비로 손실분 해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주시고, 마지막 모임으로 볼링장을 찾은 3학년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낍니다. 물론 깊이 깊이 감추고 또 한 번 열쇠를 채웠어야할 돈다발이었기에, 이번 여름 또다른 역할로 2006학년도를 열심히 뛸 선생님들께 식사대접이라도 융숭하게 해 드리려 한답니다. 따뜻한 배려와 넉넉한 맘 씀씀이를 가슴에 새겨두고,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고 싶어서 여름 식사대접으로 미뤄두는 것이지요. 이번 사건을 접하고 또 다른 삶의 배움을 얻었으니, 이젠 용서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리상자의 맑고 아름다운 음성을 그려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