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달그락달그락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잠이 덜 깨,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가 보니 아버지가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계셨습니다.
올해 예순 둘인 아버지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천지가 개벽하시는 줄 알고
살아오신 분이라 가스불을 켤 줄도 모르고,
매일 쓰는 밥공기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는 분이십니다.
모든 가족들이 외출해 가끔 집에 혼자 계시기라도 하면, 밥을 차려 드실 줄 몰라
그냥 찬물에 밥 한 숟가락 넣어 훌훌 드실 정도죠..
그런 아버지가 이 새벽에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뭐 하세요?" 하고 여쭈니 아버지는 멋쩍은 듯 웃음을 지으시더군요..
"니 엄마가 입맛이 없다고 해서 미역국 좀 끓여보려고.."
혹여, 남동생이 계란 부침이라도 해 먹을라치면 사내녀석이 채신머리없이
부엌을 들락인다며 호통을 치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변화시킨 건, 바로 작년 겨울...평소 고혈압과 편두통으로
오랜 세월 고생하시던 엄마가 쓰러지신 후 부터였죠..
그때, 온 가족이 겪은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늘 앉은자리에서 꼼짝 않고 엄마를 불러 잔심부름을 시키던
아버지는 그 버릇을 완전히 고치셨죠. 그리고는 엄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하는
자상한 남편으로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한번은... 눈이 많이 내리던 밤에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군고구마가 먹고 싶다..'하셨는데..
언제 다녀오셨는지..군고구마를 가슴에 품고 오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때, 흐뭇해하던 엄마의 표정은 지금도 제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영상으로 남아있답니다.
한참동안 미역 손질을 하고 계신 아버지께....
"미역국은 끓일 줄 아세요?"하고 여쭤보니...
"물 끓여 미역 넣고, 소금 넣으면 되는 거 아녀?.........." 하십니다..
새벽에 출근하는 딸을 배려해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시려던 아버지....
제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두 분께..따뜻한 밥..지어드리고 싶네요..
아버지의 등을 떠밀어 방으로 모시고 저는 미역국을 끓입니다.
그 국을 드시면서 두 분은 또 도란도란 얘길 나누실 겁니다.
아마도 당신이 끓인 거라며 큰소리 치실 아버지...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흐뭇해하실 엄마....제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우리집 아침 식탁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