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을 애타게 기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첫눈과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올해는 그런 눈이 반갑지 않네요.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라고 했던가요?
보름이 넘도록 내린 눈으로 세상은 온통 하얗고, 차량들은 구정물을 뒤집어 쓴듯 전쟁의 패배자 같은 지친 모습으로 길거리로 질주하는 모습이 안타까울지경입니다.
아침엔 눈뜨자마자 커텐을 걷어 밖을 내다보고 , 라디오 일기예보에 귀기울이며 어떻게 출근할까 걱정하며 심란하게 나왔는데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어야 할 제 차가 말끔하게 치워진 거였습니다.
어! 분명 내 차인데~ 누가 잘못 알고 눈을 치웠나하고 놀랐고, 길가다 횡재한 사람처럼 기분 좋게 룰루랄라 출근했었습니다.
내ㅡ내ㅡ 누가 눈을 치웠을까? 궁금한채로 하루를 보내며 친구들에게 산타할아버지가 벌써 다녀갔나보다며 행복했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도 눈 떠 보니 세상은 하얗고 주차된 차마다 눈을 무겁게 뒤집어쓰고 있더라구요.
그런와중에도 내 차는 또 말끔하게 눈이 치워진겁니다.
도대체 누구일까?
밭에 일하러 나간 노총각 집에 우렁각시가 나타나서 빨래하고 밥 지어놓고 했던 것처럼 저한테도 우렁각시가 있나해서 궁금해지고 행복했습니다.
어릴적 동화를 읽으며 나한테도 우렁각시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소망이 이루어진 것 같아 설레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3일째 되는 날은 ' 올 겨울 강추위 ' 라고 일기예보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전화가 울려서 받아보니 1층 사는 소정엄마가 자동차 열쇠를 엘리베이터로 내려보내라는 거였습니다. 왜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내려보내라고만 하는겁니다.
눈 털어주다보니 시동까지 켜서 차안을 따뜻하게 해주면 좋겠다 싶어 열쇠를 내려보내라고 했던 거였습니다.
이틀동안 나를 행복하게 했던 우렁각시는 1층에 사는 이웃엄마였던 거였습니다.
소정엄마 덕분에 뜨뜻하게 달궈진 차를 타고 나올 수 있었고, 다른 운전자 눈에 눈을 말끔하게 치운 부지런한 운전자로 보여서 하루종일 내내 행복했었습니다.
이 아파트에 처음 이사왔을 때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발 동동 구를 때 스스럼없이 손 내밀어 도와주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는데, 올 겨울엔 방학때까지 차 눈을 치워주고 시동 걸어주겠다고 퇴근길에 열쇠를 맡기고 가라는 따뜻한 배려까지 해주는 천사 같은 엄마랍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더니 이웃이 저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된겁니다.
출근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도 먼 훗날 퇴직하고 아침시간 여유로울 때 출근하는 이웃들을 위해, 겨울날 눈 치워주는 멋쟁이 할머니가 되어야겠다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우렁각시가 되면 따뜻한 겨울을 보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