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신랑은 12시가 다 되어서 들어왔습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신랑은 어김없이 세 살된 딸아이가 있는 방으로 먼저 들어갑니다.
그런 남편에게 저는 또 한마디하죠.
"손도 안 씻고 아일 만지면 어떡해....발 냄새난다...얼른 씻구 와!!"
신랑은 미안하다고 씩 웃으면서 얼른 목욕탕으로 들어갑니다..
잠자리에 들면 우리 신랑 눈감기가 무섭게 코부터 곱니다..
그러면 그때도 저는 한마디하죠..
"자기 때문에 우리 혜은이 깨겠다..자기 작은방 가서 자!!"
그러면 아이 때문에 마음 약해진 우리 신랑은 한마디도 못하고 작은방으로 쫓겨나가죠..
요즘 들어, 신랑에게 부쩍 잔소리가 늘어난 저입니다.
'발 냄새난다', '코골아서 잡을 못 자겠다', '뱃살 안보이냐며 그만 좀 먹어라...' 등등
그럴 때마다 신랑은 알았으니까 자기 좀 사랑해 달라며 귀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곤 합니다.
사실, 신랑이 특별히 절 귀찮게 하거나, 속 썩이는 일도 없는데...요즘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가을 옷 정리를 하다 장롱에서 고등학교 적
졸업앨범을 보게 됐죠..
그 사진첩엔 19살인 신랑과 제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고교 동창인 우리...18살 때, 지금의 신랑을 보고 저는 첫눈에 반했었죠..
그때는 절 좋아해 주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어쩌다가 마주치면 하루종일 설레여서 공부도 안되고, 체육시간이면 창문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편의 뒷모습만 봐도 너무 행복해했었죠..
하지만 그런 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울기도 많이 했었답니다..
그러다 같은 대학에 입학, 자연스럽게 동문회 자리가 잦아지면서
우린 가까워지게 됐고, 한 가정을 이루게 됐죠..
그리고 가정적이고 성실한 남편...이렇게 나만을 사랑해주고, 우리의 분신인
보성이의 아빠가 된 지금...가장으로서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항상 피곤한 사람에게
전 왜 이렇게 못되게 구는지....그때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수줍어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투박하고..거친 아줌마만 남아있네요..
저의 이런 구박에도 여전히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는 남편은 옛날 그시절, 제게 받기만 하고
준 게 제대로 없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라네요....
그래서 가장 순수하고 풋풋한 마음으로 남편을 바라볼 수 있었던 고등학생 때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려구요..
나의 첫사랑인 이상준~!! 발 냄새, 코고는 소리, 볼록 나온 배까지...모두 사랑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