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는 늘 그렇듯 오빠입니다.
취기가 적당히 올라오면, 4남매 중 유일한 남자이자 장남인 오빠는 여동생들에게 일제히
전화를 했습니다.
분명히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곤 이리저리 전화번호를 눌러댔겠죠.
오빠가 전활 해 하는 얘기는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밥은 먹었냐..아픈 곳은 없냐..
지극히 일상적이었죠...올해 38살인 오빠는 우리 모두에겐 10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실제 아버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시골에 혼자 계시는 엄마에게는 남편이 되어 드렸고, 이혼하고 아이 둘을 키우며 사는 큰언니에게는
남편노릇까지..물론 오빠 팔짱을 끼고 결혼식 행진을 해야했던 제게도 오빠는
아버지 그 이상이었죠..
얼마 전, 오빠는 출장 차 서울에 갔다, 경기도에 사는 작은 언니네 집에 잠깐 들렀는데요..
씁쓸하게 돌아온 모양입니다.
작은 언니는 22살이란 어린 나이에 형부의 구애에 못 이겨 결혼을 하게 됐는데요..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형부는 급한 성격과 술만 마시면 주정이 심해 언니가 지금까지도
내내 마음고생을 하며 살고있죠..가끔 친정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에도 형부는 술만 마셨다하면
처가에서 해준 게 뭐가 있냐며 자기 성질대로 하기 일쑤입니다. 자매 중, 제일 예쁘고 부지런해
주위에서 서로 중매하려고 했던 언니인데... 아마 오빠가 찾아갔던 그 날도 형부는 술을 마시고
늦게 까지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언니를 보고 온 후, 오빠는 한동안 상심했었죠..
큰언니 역시 3년 전, 형부가 하는 일이 잘 안되어 몇 년 째 생활 유지도 안 되고
빚만 늘어가자 모자 가정이면 차라리 정부에서 주는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느냐며
이혼을 한 상태입니다. 다행히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조카들이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고
공부를 잘해 그 걸, 위안삼아 살고 있지만 앞으로 일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끝으로 저....저는...그저 평범합니다. 10년 나이 차가 나는 남편을 만나 처음 결혼한다고 했을 때,
반대가 많았는데요..지금은 아이 둘 낳고 잘 살고 있으니..그나마 오빠는 한시름 놓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라는 건 이런 건가 봅니다. 많이 주지 못해..또 도와주지 못해 마음 아픈...
그렇게 늘 변변치 못한 가족들 때문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는 오빠가 한없이 안쓰럽고
또 미안하기만 하네요...오빠가 가족들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알지만, 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몫이니만큼 잘 해나갈거라 믿으며 너무 걱정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이 들수록 오빠는 아버지의 걸음걸이며, 인자하셨던 성격까지도 닮아간다고..엄마는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그런 오빠를 보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등 뒤 서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저는 그런 오빠가 있어 너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