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40대 가장입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적부터 제게 늘상 말씀하시곤 했죠..
"넌, 절대로 아버지 닮지 말아라..나중에 결혼하면 안사람만을 아껴줘야 한다.."
어머니 당신은 아버지에게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하셨으니..이 아들이라도 그렇게 사는 모습
보고 싶으셨던 거겠죠..이런걸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하나요?
늘 마음고생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그래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런 아버지를 닮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죠.
그런데.. 핏줄이 어디 갑니까!!
결혼하고나니 저도 아버지와 똑 같아지더군요..
완전히 복사판처럼 말이죠..
아내가 그러더군요
"당신은 어찌 아버지와 똑같아요?"그때마다 저는 버럭 화를 냅니다.
사실, 아버지와 닮았다고 하면 괜시리 화가 납니다..
제가 아버지와 닮은 점은 정말 많습니다..
첫째, 무슨 일이 있어도 부엌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여자가 해야 할 일.. 남자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구분이 되어 있죠..
결혼하고 난 후, 줄 곳 이렇게 생활했으니..이십여년이 훌쩍 지났네요.
그런데 최근, 저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제가 좀 일을 쉬고 있거든요..몸이 좀 안좋아진게 첫째 이유이기도 하지만,
건축일을 하고 있는데 일거리가 없어서이기도 하죠..
아내는 좀 쉬면서 재충전한다고 생각하라는데..아이들 학교 가고, 아내도 출근한 뒤
혼자 남게 되면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초조해지기도 하네요..
바쁜 와중에도 반드시 제 아침식사만은 제대로 챙겨주고 가는 아내인데,
집에 있으면서 뒷정리도 안해주는 건 너무한 일이다 싶더군요..
전에는 해본적도 없는 청소기밀기, 설거지, 건조대에 빨래 널기....
엊그제는 어머니께서 제가 집에 혼자 있는 줄 알고 낮에 들르셨더군요..
제가 청소기 밀고 있던 모습을 보셨죠..속마음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그렇게 집안일 도와주니
얼마나 보기 좋냐며..이제야 느즈막에 철이 드는 것 같다고..저를 칭찬해 주시더군요..
왠지 좀 쑥스럽고 어색했지만..뭔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퇴근 한 아내가 또 호들갑스럽게 한마디 하겠죠?
"당신이 왠일이예요~~너무 고마워요~~~~"
하지만, 그런 아내의 과장된 표현이 싫지는 않을 것 같네요.
군산시 미룡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