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보름정도 후면 큰딸이 결혼을 합니다.
무언가 간절히 기다리는 날은 더디게 오는데, 딸의 결혼 날짜는 빠르게만 다가오더군요..
집안 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딸에게는 무엇이든지 다 준비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딸아이는 어지간한 것은 다 준비했다며 아무 것도 해주지 말라더군요..
지금까지 딸과 단 둘이 살고 있었는데, 그 애를 보내고 어떻게 살지요..
늘 의젓하던 아이.. 중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그 때도 꿋꿋하게 버텨준 딸이죠..
제 딸아이라서가 아니라 못 생긴 저와는 달리 예쁘고, 피부마저 뽀얘서 주위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던 아이였습니다.
딸아이가 같은 굳이 이곳에 직장이 있는 남자를 만나려 한 것도 순전히 저 때문이었죠..
혼자 사는 게 늘 안쓰럽다며 결혼하면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생을 집으로 불러들이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사는 나를 오히려 딸애가 엄마처럼 걱정을 하는 것이죠.
엊그제 저녁 늦게 일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니 딸아이가 방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혼수준비하느라 힘들지 않느냐며..그동안 잘 키워줘 감사하다는 얘길 하며
몇 달 전에 제게 거금을 내놨습니다. 생각하지도 안았던 저는 감동하다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갔을 때, 넉넉한 월급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점심 한 번, 밖에서 먹지 않고 꼬박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구요..여기저기 외근이 많은 직업이었기에 차는 필수였음에도 버스를 타거나 직접 걸어다녔죠..
언젠가 견디지 못해 승용차 얘기를 꺼낸적이 있는데..중고도 생각보다 비싸 결국 사주지 못했죠.
웬만해서는 부탁을 잘 안 하는 딸의 청을 거절하자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엄마는 영원히 늙지 않는 줄 알았는데..이제 보니 늙는다며 훌쩍이는 딸과 자정이 넘도록
쌓인 얘기를 나눴습니다..
선머슴처럼 왈가닥인 둘째딸과 달리 큰딸은 천생 여자였죠.. 큰 소리 한 번 안 내고 얌전한데다
행동은 또 얼마나 어른스러웠던지요.. 마음이 여려 동생과 싸우면 오히려 우는 아이였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멋을 낼 만도 한데...동생이 안 입는 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옷 투정 한 번
안 했죠. 딸애와 저는 나오는 눈물을 참으려고 천장을 바라보며 자꾸만 눈을 깜박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무 말 없이 딸애의 손을 꼭 잡았죠..
나와 함께 자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쌓였던 피로가 녹아버린 기분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