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골목에 주차되어 있는 15년을 함께해온 차를 보니 왠지 감회가 교차합니다.
평생 주인에게 충성하며 늙어버린 애마처럼
이제는 잦은 고장에다 수리를 하더라도
이내 다른곳에 고장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니
수리비만 해도 만만찮게 들어가니 작년까지만 해도 어떻게 고쳐서 타보려고 하던 남편도
이제는 불안해서 도저히 않되겠다고 포기를 해버린 상태이다 보니
앞니빠진 호랑이처럼 초라해진 모습이 오늘따라 왜이리 처량하게 보이는지...
15년전 직장을 다니던 남편이 자기 일을 해보겠다면서
사업을 벌이는 바람에 도저히 차가 없으면 기동력이 없어서
영업을 할수 없었기에 어렵게 할부금을 내면서 장만한 것이 인연이 되어
아직까지 무사고로 우리가족의 발이 되어준 고마운 차였는데
이제는 일년이 멀다하고 나오는 신형차에게 밀려서 구닥다리가 되어버렸지만
정이 들어서인지 어느차 부럽지 않게 편안하게 잘 타고 다녔는데
지나간 세월속에서 이제 수명을 다하려나 봅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5살때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잠재의식속에 차에 대한 공포감은
항상 마음구석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멀리 여행을 갈때도 차를 타는 것이 싫어서 꺼리기도 하고
그리고 항상 차를 탈때마다 혹시 또 사고가 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어떤 차든지 마음편하게 탈수 있게된것도
그동안 남편의 무사고운전실력과 왠지 우리차와의 좋은 인연이 한몫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지금 큰애와 나이가 똑같은 15년전.
새차를 처음 남편이 몰고 왔을때 어찌나 좋던지요.
하지만 골목에 주차 해 놓기도 아까워서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그자리에 잘있나 확인해보기도 하는 남편에게 그래도 명색이 신혼인데
나보다 차를 더 애지중지하는거서같아서 정말 그땐 눈에 불을 켤 정도로 질투심마저 느끼기도 했답니다.
그때만 해도 차가 귀한 시절이었기에 모든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던 잘나가던 전성기도 있었지만
슬슬 노화가 되면서 이곳저곳의 부속품을 갈면서 고쳐야하니
돈이 만만찮게 들어가길래 슬슬 걱정이 되더군요.
남편이 자동차 수리센터에 갈때마다 고쳐도 끝이 없다면서 속상해 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그래도 계속 고치다 보면 한 이십년은 더 타고 다니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도 했건만
벌써 도로위를 달리다가 시동이 꺼져서 레카차를 부르기를 여러번 한 상태이다보니
이젠 남편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다고나 할까요.
차에 시동을 이십여분 이상을 걸어도 엔진소리가 이상하고
특히 매연 냄새가 얼마나 지독하게 내뿜는지 ...
가족의 목숨까지 걸려있다고 생각한 남편은 결국은 차를 폐차시키기로 굳게 마음먹었나봅니다.
며칠전 밤, 남편은 슬거머니 사라졌습니다.
어디갔나 싶어서 나가보니 차 옆에서 덩그러니 서 있는게 아니겠어요.
“당신 여기서 뭐 해요?”
“기분이 좀 이상해지네. 그동안 고장이 잦아서 속이 참 많이도 상했는데
15년동안의 정이 들어서 그런지 마음이 편하질 않으네.”
요사이 고장이 잦아서 꽤나 남편의 애간장을 태우긴 했지만
한낮 물건에 불과한데 정든다는게 정이란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린 차 옆에서 한참이나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작별 인사라도 하는것처럼...
그리고 결혼15년동안의 함께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치는데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한때 남편이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차를 처분할 위기도 있었지만
잘 넘기면서 남편의 발처럼 움직여준 우리가족의 추억과 함께한 차를 쓰다듬듯이 만져보니
그저 고맙다는 생각과 함께 서운함이 밀려오더군요.
섭섭한 마음은 아마도 아직까지도 운전면허증도 없는 나보다
15년이란 세월동안 애지중지 운전해온 남편이 더 하겠지요.
그렇게 남편과 내일이면 세상에서 존재의 가치가 사라져버릴 차앞에 우두커니 서서
그동안 우리와 함께 숨쉬었던 차와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연 못지않게 사람과 물건사이에도 인연이 있지 않나 싶어요.
어떤 물건이든 내 것이 됨으로써 가치를 가지게 되고 그 가치를 알게 될 때 비로소
그 물건과의 소중한 추억이 쌓이고 이야기 거리도 나눌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요즘은 돈만 있으면 물건들을 쉽게 구입해서 쓸수 있는 아이들이 너무 쉽게 물건을 버리는건 아닌지
어린시절부터 가난하고 여렵게 살아서 절약이 몸에 베인 나도 살 때 만큼은 소중했던 물건들을
싫증이 난다고 혹여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되돌아 보는 소중한 시간도 가져보게 되네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잘 듣고 있습니다..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154-2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