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집은 요즘 보기 드물게 4대가 함께 모여 산답니다.
연로하신 시할머니가 계시고, 시부모님, 그리고 3형제가 모두 결혼해서 아이들과 함께 15명이란 대식구가 같이 뽁딱뽁딱거리며 살아요.
지금은 위계질서가 잘 잡혔지만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요.
며느리 전부가 직장생활하다보니 퇴근할때까지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주겠다 하시던 어머니가 쓰러지셨을때는 하늘이 캄캄했었지요.
번갈아가면서 식사랑 청소당번을 하긴 했으나 어떤땐 제가 일을 훨씬 많이 하는듯 불공평하게 느껴질때가 있었고, 별것 아닌일인데도 괜히 오해가 생겨서 감정상할때도 있었고...
지금이 옛날 조선시대도 아니고 분가하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굴뚝같았지요.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잘날없다고 늘 부딪치며 와글와글 사니 늘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불거져나오는데 왜 구태여 대가족을 고집하는지 아버님이 이해가 안될때가 많았어요.
수십년간 부대끼면서 살아온 가족들도 가끔씩 싸우기도 하고 혼자있고 싶기도 하고 가족과 떨어져서 독립해보고 싶을때가 있는데...
하물며 시댁이란 공간은 어렵게만 느껴졌었지요.
얼마전엔 동서에게 마음상한 일이 있었는데 도련님이 괜히 제게 삐딱한 시선으로 보길래 남편한테 일러서 겉으로 드러나게 말은 안하지만 냉랭한 기운이 감돌때가 있었는데
아버님이 어느날은 약주를 한잔 하시고 들어오시더니
아들 며느리들을 다 불러모아놓고는 손을 하나하나 다 잡으시며 그러시는거에요.
"나는 외동으로 자라서 그런지 너그들이 사이좋게 이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밥을 안묵어도 배가 부르다카이. 제발 정있게 잘 살아다오."
아버님의 눈물어린 호소와 정성에 감복해서 웬만해선 그냥 둥글둥글 이해하며 살려고 노력한답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특이한 재주가 많으시다는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얼마전부터는 저희 세며느리의 머리도 손수 다 잘라주신답니다.
머리가 조금 덥수룩하다 싶으면 저희 세며느리는 바로 아버님께 달려간답니다.
저혼자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네모난 생각을 버리며 점점 둥글게 둥글게 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답니다.
아버님께서 형제들이나 며느리들 사이에 서서 슬기롭게 중재역할을 잘 하시는 까닭에 저희집 행복전선 이상무!랍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늘 딸처럼 아껴주셔서 친정아버지보다 더 크신 사랑에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전주시 금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