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혼자 생활한지도 어언 10년이 다 되었습니다.
이곳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지내던 전주에서 매일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습니다..
그땐 왜 그렇게 집을 벗어나고 싶었는지...
"스무 살만 되면 서울로 꼭 올라가고 말 거야...그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구속받지 않고 살 거야~!"
따뜻하고 자상하게 보듬어주기 보다는 엄격하고 고지식하기만 했던 아버지 곁에서
어깨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늘 주눅 들어 불우한 십대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공부했고..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꿈에 그리던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서울에 올라온 얼마간은 낯선 곳의 어색함이나 외로움 따위는 잊고,
그동안의 답답했던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밤새도록 놀며
하루하루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죠..그때는 타지 생활하는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전화도
성가시게만 느껴졌습니다.
이젠 나도 어린애가 아닌데..늘 밥 잘 먹고 다녀라, 집에 일찍 들어가라......
왜 그렇게 시시콜콜 간섭을 하는 건지 구속의 연장이라고만 생각했죠..
남자친구와는 밤새 통화하는 것도, 아버지께는 고작 1,2분도 할애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스무해가 지나도록 저는 아버지께 형식적으로 대했구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에도 잘 내려가지 않게 됐고..엄마에게만 짧게 안부를 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준비를 하면서부터 그동안 제가 얼마나 잘못하고 살았는지 알게 됐죠..
남자친구를 소개해드리려고 내려간 고향집에서
빛 바랜 낡은 양복을 꺼내 입고 계신 아버지를 보게 됐습니다.
제대로 뵙지 못한 동안 많이 늙으셨더군요. 그리고 그 옛날, 온 가족을 호령하던
기세나 아집이 남아있지 않을 만큼 초라해 보였습니다.
또, 그렇게 애교도 없고 무뚝뚝하던 딸이 남자친구의
손을 꼭 잡고 한번도 보여준 적 없는 미소를 띄우고 있을 때..
섭섭하셨을 법도 한데..딸과 사위 될 사람이 온다기에
이발소에서 머리 손질까지 하고 오셨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시는 아버지를 보니
왜 그렇게 마음 아프던지요....왜 지금까지 그 주름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건지..
후회만 남았습니다.
이번 추석연휴에도 저는 결혼을 2주일 앞둔 예비 시댁에 가느라 부모님께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먼저 다가가고 싶은데...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겠죠?
하지만, 남은 동안 후회할 일 없이 효도 하며 살거라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