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형이 병원에서 진찰 받은 지 벌써 9개월째가 되가는군요. 형이 처음 집에 왔을 때.. 나... 말도 안하고 이유 없이 직장 끝나고 늦게 들어가고 밥도 같이 먹지 않았는데... 그거 알고 있나요. 저 어린 적 생활을 잠시 생각해보면 시골에서 태어나 비록 없이 살았어도 명절이면 가족들과 함께 모여 송편 빚고 전 붙이고 윳놀이도 하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답니다. 누구에게나 어릴 적 추억이 있겠죠. 형은 학교 다니는 것보다 돈버는게 좋았는지 고등학교 때부터 일찍 서울로 올라가서 생활을 했죠. 어머니께서 4남매 중에서 장남이라고 더욱 더 신경을 쓰고 해달라고 하는 것 다 해주었는데.. 형은 뭐가 그리 불만이 많았던지요. 그렇게 사회생활을 빨리 하고 싶었는지요. 아님 집에 있는 것이 그렇게도 답답하셨는지요. 아버지 돌아가신 뒤 더욱 더 어려워진 가정에 형은 집안일은 일체 손도 안대고 도리어 가져가는 입장 이였죠. 전 수학여행 때 돈이 없어서 못갈 뻔 했는데... 선생님과 친구들이 한푼 한푼 모아서 갈 수 있었고 중학교 1학년 소풍 때는 아무도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빈손으로 학교를 가야만 했을 때.. 어떻게 점심밥도 없이 갈 수 있냐면서 못 간다고 안 갈려고 했던 기억들이 나는군요. (어머니께서 형에게 해준 정성을 나에게 절반만이라도 해주었더라면...하는 미련이 지금도 남는답니다.) 그때 형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요. 이젠 제가 커서 사회인으로써 직장생활하고 어려운 중에서도 편입을 해서 대학교를 다니며 형을 대신하여 아프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 형은 10년 넘게 떨어져 살다가 올해 초에 간경화라는 아픈 몸으로 집에 와서 나를 두 번 울렸죠. 동생도 갑자스런 급성간경화로 입원해서 나를 아프게 했는데... 하지만 힘든 중에서도 아픈 형을 그냥 못 본체 나둘 수가 없었기에 병원에 형을 입원시키고 왔다 갔다 하면서 힘들게 생활을 한 것 아시나요. 병원에서는 복수가 많이 차고 주변 장기도 손상을 많이 입어서 오래 못 견딘다고 또한 손 술수도 없다고 말을 했죠. 그냥 계속 약물치료 받으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 그때도 난 참 형을 원망을 많이 했죠. 벌써 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은 내 운명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지금까지 연락도 없이 살다가 아픈 몸으로 이제야 와서 이렇게 내 앞에 와있으니 ... 지금까지 무얼 했단 말입니까 모아둔 돈도 없고 빈손으로 아무것도 없이 우리들 앞에 아픈 몸으로 와있던 형을 난 또 원망을 뒤로 한 채 이렇게 돌보고 있는데... 병원퇴원하고 집에 와서 몇 일간 어머니와 의견다툼으로 짜증난다고 어머님께 화내고 못 할 말도 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제가 더 이상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하지만 이젠 모든 걸 잊기로 했답니다. 직장에 나가면 집에 혼자 계셔 늘 심심해 하셨을 어머니 곁을 이젠 형이 말동무도 되어드리고 친구가 되어주어서 얼마나 좋은지요. 내가 그럴 수 없기에... 난 그건만 으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답니다. 내일이면 종합검진을 받아서 간암으로 전위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검사한다죠. 돈 걱정을 하던 형. 돈은 빛을 내서도 대줄테니까 너무 걱정은 말고 지금까지도 잘 견디어 주었던 것처럼 힘내고 더 이상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형 검사 끝나면 우리 전체 가족사진이 한 장도 없는데 꼭 함께 찍도록 해요. 나라도 이렇게 건강할 수 있어 당신들을 돌 볼 수 있어 너무 감사해요.
또한,
어머니와 형 그리고 동생 이렇게 함께 한 자리에 모여서 사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하답니다. 사랑합니다.
익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