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이라고 대학원 식당에서 영계백숙을 점심으로 먹은 오늘! 무사히 청주까지 잘 데려다준 코란도에게 감사하며, 아무 걱정말고 열심히 하라며 송별외식으로 격려해주고 고3 딸 등하교길을 기쁘게 책임져주는 남편에게 감사하고, 쾌적한 도서관을 찾아 [교육연구 및 통계방법][행동수정]책은 물론 [Journal of counseling psychology]에 실린 단편 해석하는 일을 큰 즐거움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항상 현재 있는 곳만을 생각하라지만, 담임없이 밤 10시까지 많은 수업과 자율학습으로 힘겨워할 학생들이 떠오르고, 매 식사 때마다 미안함이 앞서는 가족들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흰 나무수국, 진분홍 백일홍, 주황빛 능소화...여름 꽃들이 화창하게 피어나고 중국단풍 탐스런 열매들이 날개짓 준비하는 강의실 길들도 아름답고, 삼성카드사 직원들이 펼쳐놓은 사은품-모기장 그늘막 텐트와 접이식 원색의자들도 한여름의 맛을 느끼게 해주었지요. 5학기째라고 선처해주신 기숙사 편한 1층(1학기때는 4층으로 시작) 116호에 3주간을 위한 터를 잡고, 잠시 마음을 정리하는 글을 쓰는 지금의 여유가 참으로 좋습니다. 지난 3,4학기 때는 개강 후 바로 있는 종합 시험 때문에 지금 이시간쯤 너무도 떨리는 마음으로 잠도 못이루고 도서관을 찾았는데, 오늘은 후배들의 그런 비장한 눈빛을 보며 논문을 위한 참고서적을 뒤적이는 여유가 있었지요. 논문지도를 받기 위해 교수님을 찾아뵈어야 했건만, 단 하루의 여름방학을 마치고 바로 이어진 고3 보충수업이 1학기의 연속인지라 특별히 진전이 없었던 논문작성때문에 우선 좀 더 준비하기로 맘먹고, 강의중이시란 교수님을 내일 뵙기로 맘 먹었답니다. 전혀 생소한 연구법과 통계로 고생을 하게 되겠지만, 2학기 중에 탄생되어 나올 작품을 위한 기본지식이 되어주리란 기대감이 있어 28,000원 거대한 책과도 씨름해볼 생각이지요. 따가운 중복의 햇살도 자취를 감추고 창밖으로 펼쳐진 잔디와 수목의 푸르름이 맴~맴거리는 매미의 평화로운 휴식처로 어둠속에 물들어 갑니다.
아침! 과학동산을 맡아 출근하는 남편과 보충수업으로 등교하는 딸을 배웅한 후, 땀흘리며 이것저것 챙기고 청소하는 중에, 말을 아끼는 것이 모든 관계를 더 순조롭게 이어주고, 더 애틋하게 배려해주게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이 늘 학생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수정하도록 도와주고, 보다 흐뭇한 자기정체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모델링도 되어줘야하기에, 말없음 보다는 늘 자잘한 일에도 말로 설명을 하고 다음 번의 확실한 수정을 위해 또 한번 강조하기까지 하는 것 같습니다.
행동수정 3차 과제물 중에 상담축어록을 쓰고 비디오 촬영 테이프 제출 건이 있어, 바쁘게 시간내어 민영이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요즘 너무도 열심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잘 뛰어가고 있는 학생인데, 화면 속의 상담자가 너무 말이 많은 것 같아 재생시켜 보기 민망했지요. 말로 늘 마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때론 눈빛 만으로 잡아주는 손의 따스함으로도 통하는 마음이어야 함을......괜한 한마디에 상처받을 수 있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지난 금요일! 마무리 정리하고 떠나와야 할 급한 시간에도 수업만 받고 독서실을 이용한다는 윤아가 걱정되어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날 너무 늦게 자서 피곤함에 집에서 쉬고 있다는 말을 듣자 또 규칙적인 생활을 강조하게 되었고, 내가 챙기지 못하는 3주 동안이 또 염려되어 어머니께도 특별히 담임 역할을 부탁드리고 나니 가슴이 훵해지더군요.
그냥 내 바쁜 일 마저 마무리하고, 마음으로 걱정되는 일들은 그냥 묻어둘 것을 그랬나? 아니야, 담임으로서 이정도의 관심은 필수이고 서운함보다는 고마움으로 남았을거야.....
지금도 학생들이 걱정되지만, 모두 자신의 몫을 충실히 잘 엮어가고 있으리라 확신하고, 오히려 이제까지의 모델링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잠시 말없음을 택해야하는 과정이라 생각하자꾸나.
어느새 가로등 불빛만 창밖 가득하고, 난 이제 떠나온 것에 잠시 미련을 접고 오로지 here & now의 정신을 새겨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