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동님 안녕하세요..
충남의 애청자입니다.
오늘, 남편에게 고마움과 사랑의 메시지 전하고 싶어 사연 드립니다.
사랑하는 내 남편 용민씨...
지금도 자기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 하고 있겠지..
우리의 바다를(태명) 보낸지 이제 한달이 겨우 지난것 같아.
작년 10월쯤..
장난반 걱정반으로 했더 임신 테스트가 두줄로 표시되었을때
좋은 맘 보다 난 무서움이 더 컸던것 같아.
직장생활하면서 늦깍기 대학생이었던 난 임신으로 인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것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지금까지 힘들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난 아기를 얻음으로 인해서 내 인생 모든것은 포기해야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사실 별로 좋지 않았어.
그런데 주위의 어른들도 너무 좋아하시고 배가 점점 불러오고, 언젠가 부터 뱃속에서 먼가가 꿈들거리고
그땐 누구보다도 행복한 엄마였어..
우리 둘다 바다를 너무 좋아해서 우리 아가 이름은 바다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내가 정말 엄마가 되었지.
그전에 가졌던 내 생각들이 얼마나 무서운 생각이었는가를 후회하면서..
언니들에게서 아기 옷과 용품들을 받을때 마다. 내 손으로 우리 바다 쓸것들을 살때마다 얼마나 행복하고 흥분되었었던지...
그렇게 행복도 잠시.
3월 8일 정기검진에서 특수 초음파를 하면서 손가락, 발가락, 척추, 귀까지 정말 건강하게 보여서 너무 좋았는데,, 갑자기 어두워 지는 선생님의 얼굴에 갑자기 두려워졌어..
"아기가 많이 아프네요..."
다른 선생님들이 달려오고, 결론은 아기가 한 쪽 폐가 전혀 발달하지 못했고, 한쪽에는 커다란 물혹이 다섯개나 있어서 심장은 물론이고 다른 내장들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거야.
태어나도 살수가 없다는 말이었지...
그 때 내 생에 처음 느끼는 무서움이었어...
결론을 내리고 집에 왔는데 세상이 멍하게 느껴졌어..
어머니께 갔다가 온다는 자기는 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자기는 휴게소에서 잠시 잤다고 하지만..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자기 눈만 봐도 알 수 있었어.
나보다 훨신 더 바다를 사랑하고 기다렸던 자기의 상심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어지..
아직도 내 뱃속에는 지난 7달 동안 같이한 우리 바다가 움직이는데 이틀 후면 보내야 한다는 것이 믿어 지지가 않았어..
다음날 우리는 서로 아무말 없이 바다만 보고 왔지...
우리는 말은 안했지만 그렇게 우리 아가 바다를 보내고 온 것 이었어...
2005년 3월 11일 저녁 9시 58분..
난 우리 바다를 낳았지만 얼굴도 못 보고 보내야만 했어..
얼마가 지날때 까지 난 후회의 눈물로 밤을 세워야 했어..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보낼것을...'
하지만 이미 뱃속에서 생을 마감한 바다를 보면 더 견디기 힘들어 질까봐 용기가 나지 않았던것 같아...
내가 우리 아가 보고싶다고 울때마다 자기는 "우리에게 아픔만 주고 간 바다 이제 그만 잊어라." 며 날 꼭 안아줬어..
그런 시련을 격은지 이제 한달이 조금 지났어..
우리의 생활은 일상을 찾아 가고 있지만...아직도 우린 서로 아픔을 감추며 산다는 것이 느껴져,,, 서로 더 아프지 않게 그 아픔을 감추면서 말이야...
자기야..
내가 집에만 오면 우울해 있다고 자기가 화도 내지만..
난 나름대로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사랑하는 내 남편 용민씨..
우리 바다. 저 멀리 보냈지만... 우리 더 착하게 살면 바다도 좋은 곳에서 행복해 질꺼라 믿어.
앞으로 더 좋은 날이 오겠지.. 우리 그날을 위해 더 열심히 살자....
사랑해...
충남 보령시 명천동 245번지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