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구백구십오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던 저에게 부모님은
"여자는 한창 이쁠 때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서 애놓고 살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다.
직장알아볼 필요없이 이참에 결혼이나 해랏. 내 선자리 알아볼테니.."
그래서 딱 한 번 부모님과 잘 아시는 아드님과 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양가 부모님 동원하여 그 남자분 그리고 저 이렇게 넷이서 만나게 되었지요.
선자린 처음이라 무척 긴장이되고 불편하더군요.
외려 상대가 아무런 이해관계없는 남남이었담 오히려 편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잠시 후 부모님이 자리를 뜨신 후
그 남자분과 단둘이 마주하게 되었는데
외모는 말쑥하게 생겼더군요
그런데,
차를 마시는 내내 정말이지 아무 말씀이 없는 겁니다.
제가 건네는 말 외에는 정말로 아무 말을 안하더라구요.
어찌나 어색하던지..
마음 같아선 차를 마시고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도리상 그럴 수 없어 식사까지 하게 되었는데 ..
글쎄 이 남자분 와인을 한 잔 들이키더니 술기운 때문인지 없던 말수가 막 생기는 겁니다. 그것도 음식을 입에 가득 넣고서 음식맛이 이렇고 저렇고 말을 막 늘어놓더라구요. 거참 엄청 민망하더군요. 그런데 그 사람은 민망하지도 않은지 아니 습관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밥을 가득 머금고도 잘 웃고 말을 잘하군요. 너무 예의가 없어 속으론 화가 났지만 다시 엄마 얼굴을 상기하며 참았지요. 하얀 치아에 음식물이 낀 흔적까지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웃는데 정말 먹은게 어떻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밥을 먹고 헤어지려고 했는데 혼자 갈 수 있다는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차에 올라탔는데 심심하다며 들려주는 음악이 뭔지 아세요?
설운도씨 노래 "쌈바의 여인"가 흘러나오는 겁니다. 트롯을 엄청 좋아한다면서 설운도씨 열혈 팬이라고 하더군요. 그 모습에 완전 깨더라구요. 남자하고 드라이브하면서 뽕짝을 듣게 되리라곤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거든요. 물론 제가 트롯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때 분위긴 영 아니었었어요.
지금 말이지만 차 내부도 엄청 지저분하더라구요.
어쨌든 집까지 데려다 준다는 성의가 고마워 거절하지 못하고 차에 탔으니 곧 집으로 갈 수 있겠지 했는데..왠걸..이 사람 길 눈이 엄청 어두운 겁니다. 왔던 길 또 가고 돌아서 가고 장난 아니더라구요. 처음엔 저랑 같이 있고 싶어 부러 그러는 것인가 했다가 길을 몰라 당황하는 거 같길래 제가 길잡이 했다는 거 아닙니까? 좌회전요. 직진요..
엄마말씀 듣고 살다 살다 첨으로 본 맞선인데 어찌나 실망스럽던지 다시는 안보리라 맹세했잖아요. 그 사람과도 끝이라 생각했구요.
저는 다시는 만나지 않으리라 마음먹으니 오히려 실망도 사라지더군요.
그게 제가 끝까지 예의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었죠.
그런데, 이후 계속되는 그 남자의 적극공세..
첫 만남에서의 엉뚱한 행동은 다 그날의 상황설정이었다고 하더군요. 자기 말로는 여자들이 자기 외모만 보고 판단을 해 실망한 일이 많았다나요. 그 이후, 저는 그 남자의 줄기찬 구애를 받게 됐고,
그냥 속았다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죠.
십년 가까이 살아보니, 정말 거짓말은 아니더군요. 저보다 훨씬 수다스럽고, 꼼꼼하고, 또 깔끔한 편이거든요.
지금은 부모님 말씀처럼 감히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런데 트로트 좋아하는 건 사실이더군요. 그래서 우리 애창곡은 모두 트로트랍니다~~
전주시 인후동 487번지 이가은
우리 가족은 모닝쇼 애청자입니다.
7시부터 쭉 함께하죠.
트로트 한 곡 나올때, 오늘은 뭐가 나올까 궁금해 하구요.
살며사랑하며, 알림방까지 잘 듣고 있습니다.
좋은 방송 감사합니다.
트로트 한 곡 듣고 싶은데,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