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잘 보내셨는지요?
저도 잘 보냈습니다.
늦었지만, 복 많이 받으세요.
4~5년전인가....
동창 찾아주는 사이트가 대 성행을 이루던 그때였습니다.
초,중,고를 함께 다닌 아주 친한 친구가 자꾸만 소개팅을 하라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꼭 제가 나가야 한다나 뭐라나 하면서 친구는 보름이 넘게 저를
귀찮게 했습니다.
사실....사귀던 사람이랑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때라 기분도 꿀꿀하고
만사가 귀찮을때였던지라 전 끝까지 사양을 했지만 친구는 절대 포기할줄을
몰랐습니다. 친구의 부탁들 거절할수가 없어서 할수 없이 소개팅에 나가게
되었지요. 그렇게 얼떨결에 약속장소에 나가던 그날....가는 내내 차는 어찌나
막히고 아침부터 왜 이렇게 되는일이 없던지...속으로
'오늘 일정 돌아가는 걸로 봐서는 나가나 마나 꽝이지 뭐...
그냥 밥이나 먹고 들어와야 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커피숍에 들어서자 누군가 손을 번쩍 들더라구요. 마치 제 얼굴을
알기라도 하는것처럼 저를 향해 손을 흔드는 남자를 보고 의아하긴 했지만
약속시간에 너무 늦었던지라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쪽으로 향했
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낯이 많이 익는다.....어디서 본적이 있나....
이런 짧은 생각을 하는 사이 그 사람이 저를 향해 말을 걸어왔습니다.
" 나야...........나 몰라? 6학년때 같은 반이었는데..."
맞아~~~! 그러고보니 그 남자는 6학년때 저와 1년 내내 짝을 하던 제
짝꿍이었습니다. 그때는 너무 친해서 친구들이 나중에 결혼하라며 놀리기
까지 했었는데...초등학교 졸업 하고 나서 처음 보는 친구였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15년정도....지났던 것일까요?
"아~~~! 너........너 어떻게 여기 나왔어? 반가워라!
근데 소개팅 나온 사람이 너야?"
"어....왜 실망했냐?"
"아니...너무 뜻밖이라...야~! 차라리 잘됐다. 처음 보는 사람이랑 하루종일
뭐하며 보내나 걱정했는데...우리 맛있는것도 먹고 옛날 얘기나 많이 하자...."
너무나 뜻밖의 일에 좋아라 하는 저를 보며 친구도 기분 좋아했고, 전 그날의
일을 그저 일생에 한두번 일어날까말까 하는 우연이다...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5년만에 짝꿍을 만나 하루종일 어떻게 시간이 가는줄
모른채 즐겁게 보내다가 밤이 되어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만났고...
또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앞으론 주자 볼것이라 마음먹었기에 그날의
헤어짐이 아쉽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인사를 하고 집에 가려는데 친구가 저에게 선물이라며 뭔가를 내밀었습니다.
"뭐야?"
"어...집에가서 뜯어봐. 책....같은거야."
"책이면 책이지 책 같은건 또 뭐냐? 근데 이건 언제 샀어? 하여간 고맙다.
나중에 또 보자!"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전 그 작은 선물을 깜빡하고 있었습니다. 엄마한테 오늘
있었던 특별한 우연에 대해 얘기도 해드리고 밤참도 먹고...텔레비젼에서 해주는
주말의 영화도 보다가 막 잠을 청하려는데 아까 받았던 선물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런데 선물을 뜯자 놀라운 일이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건 책이 아니라 친구의 일기장이었던 것입니다. 날마다 쓰진 않았지만 며칠에
한번씩 꾸준히 몇년간을 써온 친구의 일기장....시작한 날짜는 아마도 군복무
시절인것 같았고 마지막 날짜는 제대를 하고 나온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가끔 한번씩 제 얘기를 하고 있었고 군복무하며 힘든 얘기...친구들 얘기...
가끔은 집안 얘기도 씌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맨 뒤 책표지 안쪽에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 나 제대했다. 위문편지 한통 없고 너 너무한거 아니야? 하긴...
넌 내가 군대 간것도 모르고 제대한것도 모르지? 아마도 이제부터 너를 열심히
찾을수 있을것 같다. 만나는 그날까지 건강하도록...."
그걸 읽고 나니 양팔에 소름이 쫙 돋아났습니다. 눈물도 쫌 났구요......
친구는 중고등학교,대학교,군대에 가서도 저를 한번도 잊은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대한후 이친구 저친구 연락한끝에 2년반만에....
절 찾았다고 했지요. 제가 기가 막힌 우연이라 여겼던 그 만남은
아주 오래전부터...제가 다른 사람으로인해 마음고생을 하던 그 시간에도
쭉 준비되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이 친구를 다시 만나기 위해 전에 사귀던 사람이랑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던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정도로 제 가슴의 파장은 너무나 컸습니다.
그리고 싫다....좋다....생각할 겨를도 없이 전 그 친구와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만나서 사귄지 4년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사실 지금은 그때 그 사람이 이 인간 맞나...?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힘들때마다, 또 어려운일이 있을때마다 전 그날 일기장을 읽으며 받았던 감동을
떠올리곤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었지만 너무나 깊은 사랑에 소름이 돋았던 그날이 있기에....
전 오늘도 하루종일 아기와 씨름을 하면서도 행복하기만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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