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가을 볕이 조그마한 마당으로 스멀스멀 밀려오기 시작하는 아침나절입니다.
커다랗게 버티고 서 있던 나무로된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입구 바로 옆에 오래된 우물이 탁 버티고 있습니다.
우물을 한 번 내려다 보면 검게 보이는 물이 얼마나 무섭고 신기하게만 보이던 어린시절이있었는데...
지금은 낡고 이끼가 끼고 물이 거의 말라버린것 처럼 초라하게 오랜 세월을 묵묵히 버티온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높다랗게 보이던 대문도 이제는 나의 키 보다 낮게 서 있으니까요.
어린시절 큰아버님댁에서의 아기자기 하던 추억들이 그렇게 그대로 남아있는데도, 어느덧 세월은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의 흔적들을 묻은채 그렇게 변해버렸습니다.
마당을 들어서면 쇠죽을 끓이던 커다란 솥이 그대로 아궁이에 있습니다.
그곳에 불을 지피고 볏단을 잘라서 넣고 푹푹 삶아대던 쇠죽의 그 향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마음 깊이 숨어있던 그 냄새를 살며시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구수하고 담백하던 그 냄새를...
그렇게 하여 안마당에 들어서면 한 편에 있는 돼지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엔 그 돼지들의 냄새를 싫다면서 코를 쥐어틀고 바라보던 옛 추억이 살포시 남아 있습니다.
아무것이나 잘 먹어대던 돼지의 먹성에 감탄하면서 이것저것 던져주던 추억이 고스란히 그렇게 남아있는데...
마당 끝에 자리한 소우리 속에는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던 소가 흰 입김을 내보내면서
금방 끓였던 쇠죽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지금 눈 앞에 펼쳐지듯 선명한 모습으로
닥아오고 있습니다.
너무 먼 거리에 있어서, 방학하는 날이오면 부모님 졸라서 그렇게 기차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먼 길을 오면 반갑게 맞이해주곤 하던 친척들의 포근한 미소또한 손에 잡힐듯 합니다.
이제는 모두 대처로 나가 살고 있어 지금은 폐허가 되어버린 공간이 무척 쓸쓸한 감정을 낳게 합니다.
어릴적 그렇게 커다랗게 보이던 풍경들이 이제는 내 키 만큼 세월 만큼이나 비켜 버린 듯 한 켠 물러선듯 작은 영상으로 그렇게 숨겨진 보물처럼 감추어져있습니다.
따뜻한 가을 볕을 안마당에 가득 채워 밖으로 보내고 싶지 않은 시간입니다.
뒷마당 감나무 잎들은 붉고 노랗게 살랑거리고 누렇게 익은 호박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서로를 이해하고 부딪히면서 느껴던 삶들을 토해내고 다듬으면서 그렇게 가을을 만끽하듯 이야기를 하고 있는듯합니다.
유년의 시절에 간직했던 아름다운 가을의 추억을 다시 한번 유추하면서 작은 편린들을 주어담아서 다시 한번 마음깊이 다독거리면서 이 가을을 흘러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