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6살의 남자아이를 둔 주부입니다 아니 아직은 다섯살이군요
항상 미래만 바라보고 살다보니 ...그래서 가끔은 제 나이도 잊어버린다니까요
전 경기도에서 살다가 전주에 내려온지는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전주 사람이었지만 신랑과 만나고 일을 해야하기에 경기도에서 살고 있었지요 하지만 뜻하지 않는 사고로 다시 전주로 내려 왓고 근근히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항상 복이 많아는 생각을 합니다 물질적으로 충분한 혜택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제 주변에는 항상 좋은 사람들로 넘쳐나죠
저는 소위 말하는 신용불량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신랑과의 결혼 생활도 이제서야 혼인신고를 했고 그로 인해 제 인생은 깨졌지요 모든게 제 명의로 되었던 삶은 저에겐 고역이었습니다 서류상의 이름이 뭐가 중요하느냐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그 모든게 스트레스였고 또한 버거운 짐이었습니다
신랑이 그렇게 미울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다른 길을 걷기에는 너무 많이 서로의 자리를 만들어 놓고 있었기에 불가능햇지요
신랑이 뜻하지 않는 사고로 전주로 내려와버리고 난후 저와 아들은 경기도에서 많은 일을 치렀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눈물흘리고 어디서 살아가야 하는지 모든것이 다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엿지요 이불은 기차로 부치고 나머지 밥숟가락과 그릇 몇개 아이 장난감등 저희 살림살이는 시누이가 경차에 실어서 전주로 옮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시누이의 근처에서 살면서 일자리를 알아보게 되엇지요 하지만 제가 할 수잇는 일은 별로 없더라구요 제가 사회적으로 신용이 좋은 게 아니었으니까여
정말 하루벌어 하루를 살아갔습니다.
정말 신랑을 만나 이렇게 까지 고생할거였다면 만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또 지금이라도 멀리 가버릴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제 주변 사람들이 신랑의 못난점을 메꿔주시더라구요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선생님도 항상 우리 아이에게 신경을써 주시고 원비를 몇달째 못냈지만 이해해 주셨으며 하나뿐인 시누이는 저에게 정신적으로나육체적으로나 힘을 주기에 여념이 없엇지요 그렇게 도움을 받았지만 정작 그 사람들이 부유하거나 고민이 없는것은 아닙니다 시누는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해서 항상 고민중이었고 그래서 항상 바빴지요 그 와중에 저희 가족까지 생각하려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가끔은요 그런 생각을 해요 복권한장 맞아서 시누반떼어주고 우리 아이 밀린 원비도 다 내버리고 빚도 갚고 이제는 정말 조용히 살고 싶다는....
이건 정말 진심인데여 만약 시누이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 이자리에 전 없을거여요 왜냐면 정말 신랑이 그렇게 미울수가 없었거든요
그래도 이제는 좀 좋아졌어여 물론 저 스스로가 많이 노력을 하는것도 있겟지만 이제 더이상 나락으로 추락하지는 않을것이기때문이죠 그동안 신랑을 괴롭히던 일도 서서히 풀려가고 그로인해 서로가 감정을 상할 대화들도 줄어드니 말이죠 전 솔직히 사랑받는 법도 사랑하는법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여
지금 생각해보면 전 아마 사랑만 받아서 그런가바요
왜 고난이 클수록 하나님이 사랑하니는 거라고들 하잖아요
고난으로 사랑받고 시누에게 사랑맏고 이제는 정신차린 신랑에게 사랑받고
엄마밖에 모르는 아이에게 사랑받고 이젠 정말 제가 사랑을 퍼 주는 일만 남은것 같네여 아마도 전 판도라의 상자가 아닌가 싶어요
다 떠나버린 한 구석의 남은 조그만하고 연약한 희망만이 남은 상자
비록 그 희망이 확연한 의망이 아닌 막연한 희망일지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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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이수미 입니다(이름은 밝히고 싶지 않네여)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 3가 752-24 206호
010-7522-9887 아구요
사연이 소개되는것을 떠나서 이렇게 떠들수 있다는게 마음의 여유가 되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