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둘 놓으면 지 애미 애비도 못알아 본다더니 제가 그꼴입니다.
너무 건망증이 심해서 일어난 웃지못할 사연 하나 올립니다.
봄 가을로 보약을 해먹으면 좋다고 해서 약을 정성드려 며칠째 먹었더니, 하얀 머그컵 안쪽에 까무잡잡한 때꿍물이 끼는 것이었습니다.
이 방송을 듣는 주부들은 어떤 상황인지 다 이해 하실겁니다.
주방세제로 아무리 빡빡 문질어 씻어도 안 지워지길래, 더러워진 컵을 빨래 삶는 물에 담궈서 같이 끓여 봤더니 아니 이게 왠일입니까?
런닝만 하얗게 되는 것이 아니라 컵에 눌러 붙었던 묵은때도 말끔히 없어지는 것입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집에 있는 도자기 머그 컵 다섯개를 모조리 넣고 빨래와 같이 삶았죠.
`나는야~ 깔끔이 엄마, 대한 민국 최고의 주부! `라는 노래까지 지어부르며 말이예요.
그까지는 좋았는데 이 말리지도 못할정도로 건망증 심한 주부가 넣을때는 컵 다섯개를 넣고 삶다가 꺼낼때는 달랑 네개만 꺼낸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어, 내가 아끼던 꽃까라 컵이 어디로 갔지?"하면서 빨래하는 내내 컵 찾으러 돌아 다녔습니다.
실상 컵은 삶은 빨래와 함께 세탁기 속으로 들어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죠.
세탁기를 돌리고 나서 얼마 후 `쿵쾅쿵쾅`하는 소리가 세탁기 안에서 났습니다.
저는 세탁기가 6년 쓰다 보니까 드디어 고장이 났나보다며 세탁기AS센타 전화번호만 찾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끼던 꽃까라 컵도 못찾고 세탁기AS센타 전화번호도 아직 못찾았는데 듬직한 우리 세탁기는 빨래에 헹굼에 탈수까지 마쳤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빨래를 널려고 힘껏 탈탈 털다 보니, 하얀 도자기 조각이 빨래사이에서 털털 튀어 나왔습니다.
어찌된 일인가 싶어 빨래속을 쌑샅이 뒤져 봤더니, 아~ 글쎄, 제가 그렇게도 찾았던 꽃까라 컵이 `다 된 밥의 재`가되어 빨래 속에 조각조각 깨어져 있는 것이아니겠습니까?
아~ 하늘이시어.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까?
인생 한탄을 몇번이나 해가며 깨진 컵 조각을 일일이 다 찾아내고 빨래를 한 번 더 행군뒤에 다시 널어 놓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이건 완전 범죄다. 이 비밀은 무덤까지 간다.`를 되뇌이면서 말입니다.
적어도 그 빨래가 다 마를때까지는 저 자신 조차 이 사건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런닝을 입던 남편이 날카롭게 찢어진 자국 두개를 발견 했습니다.
그래서 무덤까지 안고 가려했던 비밀은, 어떠한 말을 들어도 화를 내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서 남편에게만 살짝 애기했습니다.
한 숨만 푹푹 내쉬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더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하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고 있던 어느날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의 선생님께서 생일도 아닌데 아이에게 팬티 선물을 해주셨습니다.
그 속에는 "태성이어머님, 태성이의 팬티가 여러군데 찢어졌길래. 어머님께서 많이 바쁘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도 좋지만 좀 쉬어가면서 하세요."라고 씌여진 쪽지가 들었있었습니다.
아~ 악몽의 그날, 그 사건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아들 팬티에까지 난도질을 해 놓은 것입니다.
무찌르자 건망증, 되찾아 오자 내 정신!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너무나 착찹합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개 망신을 결정한 이유는 우선 김차동씨 방송을 잘 듣고 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고 또, 행여나 저 처럼 심한 건망증에 자아존재감이 흔들리시는 주부가 있다면 `저도 그래요, 여기 더 심한 사람도 있습니다.`라고 위로해 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주소: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3가 서곡 대림 APT 103동 902호
전화 :016-577-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