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전주로 물건을 납품하러 가다 라디워 파워를 키고 볼륨을 높이니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일년전 쯤에는 출근시간에 항상 듣고 감동받고 웃고, 즐거움 이었는데....
전에 다니던 회사가 아침 8시까지 출근시간인데 집에서 7시 20분에 나와서 회사 주차장에 도착하면 40~50분 정도 된다.
8시출근이 그 정도 도착하면 일찍도착도 아닌데 항상 이 방송을 듣고 8시쯤 하는 광고를 할때쯤 헐레벌떡 뛰어가 조회 할때 들어가 눈치를 보던 때가 생각이 나더군여....
그럼 지금은 뭐하냐구 물어 보시겠죠?
지금은 귀농을 해서 어머니가 하시던 가업을 물려 받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전주에서 된장과 청국장을 만들어 시장에서 소매도 하시구 납품도 하셨는데 맛은 좋았지만 가업으로 이어받기에는 규모가 작아 좀더 노력을 하면 귀모가 커질것 같아 일년 전 쯤 진안중에도 산골로 통하는 어은동이라는 마을로 들어 왔습니다.
작년 한해 동안은 초기 자본이 부족하여 사람을 사서하면 돈이 많이 들어 이것 저것 고치고(기술자가 하면 일주일도 안 걸리는 걸 3개월 걸려서 했습니다.) 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11월 달 부터는 메주 만들고, 올 4월 까진 된장을 만들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모아 두었던 돈은 바닥이 나구 그래서 괜장이 힘들었습니다.
요즘 들어서야 된장도 조금씩 팔리구 청국장도 어머니 덕분에 좋은 거래처도 생겨
와이프와 19개월된 딸래미 밥 굶기는 것에서는 벗어 났습니다.
첨에 이사와 초겨울에 장인어른이 집에 구경하러 오셔서는 우시더군여...
당신딸 시골에서 고생시키지 말라구 도시놈한테 시집 보냈던니 당신이 살던 시골보다 더 깡촌에 들어와서 산다면서여....
물 좋고, 맑은 공기있는 시골에 살다 보니, 도시보다 더 좋다고 울 와이프가 장인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찡하더군여....
울 와이프 시골에 자라고 시골에서 고교시절까지 다녔지만 저 보다도 더 시골을 모르고 자랐는데 여기 들어와서 고생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딸래미가 걸어 다녀 조금 손이 덜 가지만, 들어올때만 해도 옆에 엄마 가 없으면 울기때문에 얘기가 자는 시간만을 골라 메주를 만들었죠.
어쩌다 시간을 못 맞쳐 얘기가 안 잘 시간에 콩이 익으면 애기를 퍼대기에 업구 메주를 만들었죠..
저를 성격파탄자라구 와이프가 농담반 진담 반으로 얘기를 하는데...제가 눈으로 봐도 힘들게 일하는 줄 알면서도 입으로는 일을 더디게 한다구 성질이나 냈습니다.
저 참 못됐죠? 지금은 그런 상황이 되면 안할걸 같은데 그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살아서 와이프와 약속했던일 채은이 여기서 채은이란 울 딸래미를 칭하는 말입니다.
채은이가 학교 갈때 쯤에는 전주로 유학을 보낼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갖추고 싶은데 가능하겠죠?
첨에 글을 올릴려구 마음 먹었을때는 김차동씨 목소리를 들어서 반가웠다는 말을 올리고 싶어서, 글을 올릴려구 했는데 제 푸념만 늘어 놓는 글이 돼구 말았네.....
참, 참고로 전 꼭 받고 싶은 선물이 있느데 제가 올린 글이 당첨확률이 적으면 제 홈피에 있는 글을 인용해도 좋습니다. safood.co.kr
울 와이프가 이탈리안 돈까스를 좋아하는데 지금 들어와서 한번도 못먹었 거든여..
물론 돈까스 먹을 돈이야 있지만 와이프가 아직은 그런거 먹는건 사치라구 해서 못먹구 있습니다.
아마 공짜라면 먹을지도 모르거든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