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부부는 저녁 먹고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운동 삼아, 구경도 할 겸 늘 재래시장을 한 바퀴돌아서 옵니다. 때 때 필요한 것도 사고 요즘은 가고 오는 '길'이 나름대로 재미있대요.
헌데 못 말리는 제 아내 얘기 좀 할까요?
집사람은 좋게 말하면 알뜰. 나쁘게 말하자면 엄청난 짠순입니다.
왜 보통 저녁때가 되면 좀 더 싸게 살 수 있잖아요. 그걸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인지라
얼마 전부터는 아예 배낭을 갖고 나섭니다.
그래야 싼 게 있으면 무거워서 못 들고 오는 일 없이 꼼꼼히 챙겨올 수가 있다면서요.
처음엔 물론 비닐봉지들 낑낑거리고 제가 다 들었죠. 그런데 이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슨
짐꾼 하나 뒀다 생각하는지 집에 와서보면 양손바닥이 벌겋게 달아올라있는데...
으~ 나중에 산책 나가는 것 자체가 싫어지더군요.
싼 것도 좋지만, 과일하나를 사더라도 크고 싱싱한 걸 사라고 귀 따갑도록 얘기를 해도
듣는 척 마는 척입니다.
전 남자라 그런지 물건을 두고 자꾸 깎아 달라고 조르는 것, 그 자리에 질펀하게 앉아서 고르는 것. 얼마라도 싸게 사려고 흥정하는 것들이 유독 창피하대요.
집사람 놔두고 멀찌감치 혼자 서 있을 때도 있으니까요.
조금씩 흠집이 있거나 심지어 썩은 부분이 있는 과일이라도 집사람은 그냥 못 지나치고
누가 먼저 사갈까~ 눈을 반짝이며 얼른 사 버리거든요.
그것도 쌀 때 사둬야 한다면서 두 세 바구니씩 사면 정말 가방이 매어 터집니다.
물이 찬 과일이 또 오죽 무겁습니까.. 아.....참 생각만 해도 두 어깨가 결려오네요.
그 무겁디무거운 배낭은 고스란히 제 어깨에 안착합니다.
(궁색한 변명인 듯!) 아니~ 꼭 무거워서, 들기 싫어서 그렇다는 건 아니구요.
정말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싼 것에 집착하는 집사람을 보면서 때론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그리 할 밖에 없게 만든 제 탓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 편이 씁쓸해오네요.
정말이지 결혼 전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낭비 안 하고 사치 안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죠.
집사람은 무겁다고 짜증내는 저에게 자기가 교대해서 멜게~ 하고 제 어깨에서 억지로 벗겨
낑낑거리며 가방을 들쳐 멘답니다. 그럴 때 보면 참 기특하고 귀여워요.
비록 제가 겉으론 이렇게 툴툴거려도 알뜰살뜰 아껴서 살려는 그 모습을 보면 얼마나 흐뭇한지
알려나 모르겠습니다. 집사람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 가정이 있는 거고
이나마 살 수 있는 거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