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7시 출근길에 김차동 FM모닝쇼를 듣고 가는 사람인데 요즘 제인생의 큰 행사내용이 생기게 되어 모처럼 용기내어 글을 올립니다.
벌써 집사람과 결혼한지도 25주년 은혼식이 눈깜짝할새 다가왔고 내일이면12월8일 음력생일이네요.결혼후 거의 매년 해외근무라 같이 생일지낸적이 거의없어 항시 미안하기만 했답니다.
고향 전주에서 대학교 졸업하고 지금보다 더 취업하기 힘들었던 3차중동전 시절 어언 29년전 1981년 겨울철 먼 경상도 울산 현대차에 지방대학에서 기적처럼 취업되어 정말 밤낮으로 열심히 일햇습니다. 그당시 한국이 이스라엘 지지한다고하여 사우디가 석유수출을 중단하여 전국이 기름부족으로 난리를 피던시절이라 어느회사도 사원모집이 없던때였지요.
그당시 포니차를 하루 손으로 200대 만들던 수준이었고 일본 미스비시 기술도입하여 점차 차종과 기술이 발전되어나갔고 1년 365일 휴가한번없이 공장증설하는 보람으로 명절날 고향 전주 못와도 서운치가 않았지요.
그당시는 울산에서 전주오려면 자가용은 물론없던 시절이었고 직행고속이 없던때라 대전에서 갈아타고 와야해서 하루가 걸렸습니다.
그러다가 카나다 몬트리올 근처에 쏘나타 10만대 현지공장 건설프로젝트가 있어 선발대로 나가게되었는데 막 결혼한 1년된 시절이었는데 회사 방침상 가족과 떨어져 1년이 지난후에야 가족들이 합류하게 되어 공장완공후 3년을 더 현지에서 근무후 울산공장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우리가족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던가봅니다.
그뒤 점차 현대차가 전세게로 진출함에따라 현지조립공장이 중소규모로 아시아각국,아프리카,중남미,중동등에 건설이 필요하게되어 세계각국에 조립공장 건설하고 현지인들 기술지도하느라고 매년 가족과 떨어져 살았지요.
덕분에 세계 30개국 문물경험을 많이도 하였습니다.-제이름이 그래서 이동식인가봅니다
한국경제가 잘나가던시절 갑자기 IMF사태가와서 하루5000대 생산하는 공장이 멈춰서자 요즘같이 똑같은 전국 모든 직장과 산업이 불경기로 어렵게 되어갔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금모으기 운동등으로 전국민이 동참하여 일어나게 되었지요.
저는 첫 취업때도 그리도 힘든 시기였고 중간에 IMF한번겪고 지금또 제2 IMF같은 경제위기를 10년마다 겪게되었네요.
지난 30여년동안 배운것이 자동차 분야라 이곳 전주 고향으로 돌아와서 조그만 자동차 부품공장을 맡아 운영하면서 현대,대우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회사들과 일본중장비 회사에 수출을 하고있습니다.
고향떠난 민들레 홀씨가 전세계 돌고돌아 다시 고향에 씨뿌리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국화꽃처럼 고향에서 열심히 이제는 가족과 떨어지지 않고 오붓히 살아가겠습니다.
대학 졸업하는 큰딸, 올해4학년 올라가는 2째딸, 그리고 올 대학 입학하는 막내아들..그리고 사랑하는 서연씨..
애들 학비에 등이 휘어지지만 결혼 25주년 은혼식에 조그만 예쁜 선물하나 해주리다.
그동안 미안했습니다, 사랑합니다.
나훈아의 "사랑"신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