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열린 판소리 명창 서바이벌 ‘광대전(廣大戰)’에 참여한 왕기철 명창(흰옷에 갓 쓴 사람)이 청중평가단 앞에서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을 부르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이고 아버지/심봉사 깜짝 놀라/아버지라니 누구요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삼년인디 이것이 웬말이오~”
1일 오후 5시 전라북도 전주 교동 전주전통문화관 경업당 마당. 국립창극단 소속 박애리(34) 명창이 구성진 목소리로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뽑아냈다. 마당에 설치된 높이 30cm가량의 무대를 빙 둘러싸고 앉은 100명의 청중평가단, 250여 명의 관객은 너나 할 것 없이 중간 중간 “얼쑤” “어이” “잘한다” 며 추임새를 넣었다. 추임새를 넣는 이가 1~2명에 불과한 다른 판소리 무대와 달리 명창과 청중의 호흡이 돋보였다. 무대가 끝나자 관객들은 “잘혀 잘혀”라며 박수를 보냈다.
판소리 공연에 청중평가단이 등장한 이 자리는 일종의 판소리판 ‘나는 가수다’였다. 전주 MBC가 기획한 이 프로그램의 정식 명칭은 판소리 명창 서바이벌 ‘광대전(廣大戰)’. 100명의 일반인 청중평가단이 여섯 번의 경연을 통해 최고 명창 1인을 뽑는 국악계 최초의 시도다. 이날은 10명이 A·B조로 나눠 각각 겨룬 후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6명을 가리는 자리였다.
◆판소리의 신명 회복=대통령상을 수상한 젊은 명창 10인이 명예와 자존심을 건 한 판 대결에 뛰어들었다. 각종 판소리대회 대통령상 수상자를 명창이라 일컫는데, 이는 곧 소리꾼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현재 국내에 생존한 명창은 110여 명. 이중 박애리 명창 외에도 형제 명창인 왕기철(51)·왕기석(49), 그리고 김미숙(43)·김학용(47)·염경애(39)·장문희(35)·최영란(46)·권하경(44)·소주호(48) 명창이 참여했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현찬 PD는 “명창을 단순히 실기인으로 평가·심사하는 요즘 경연대회의 추세와 국악계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소리꾼과 청중이 더불어 신명 나고 흥겨운 무대의 복원, 즉 판소리의 원형을 회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이름이 ‘명창전’이 아닌 ‘광대전’인 것도 큰 예술혼을 지닌 존재라는 명창의 본질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청중평가단엔 전국에서 400여 명이 신청했고, 이중 10~60대 100명을 추첨했다.
7분 자유미션으로 치러진 경연은 다채로웠다. 염경애 명창은 ‘춘향가’ 중 ‘옥중가 대목’을 애절하게 선보였다. 권하경 명창은 창작 판소리인 ‘안중근 의사가’를 선보였는데, “대한독립만세” 구절에선 작은 태극기를 한손에 쥐고 흔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판 즐기고 가자”=이미 최고로 평가 받는 명창들이 서바이벌 대회 참가를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판소리의 대중화’라는 공통의 지향점이었다. 무대 뒤에서 만난 왕기철 명창은 “평소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부러웠다. ‘광대전’이 흥행하면, 판소리가 다시 살아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김학용 명창은 “붙으나 떨어지나 ‘한판 즐기고 가자’는 마음으로 왔다. 관객 반응이 열광적이어서 무대 자체로 즐거웠다”고 했다. 공연을 마친 명창들은 한 데 모여 “떨어지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얘기를 나누며 웃기도 했다. 청중평가단으로 참여한 전주 시민 송경주(55)씨는 “평소 판소리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니는데, 오늘은 아주 참신한 무대였다”며 즐거워했다.
이날 통과한 6명의 명창은 남은 경연 동안 판소리 다섯바탕을 비롯, 단가·민요·국악가요 등 다양한 미션을 통해 최후 1인을 가린다. 이날 녹화를 포함한 앞으로의 경연은 10일부터 8주간 매주 월요일 오후 11시 10분 전주MBC를 통해 방송된다. 전주MBC 홈페이지(www.jmbc.co.kr)에서 청중평가단 신청, 다시 보기도 가능하다. 전국 편성도 논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