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마다 가는 곳이 있습니다.
삼월 초순엔 섬진강 매화마을에 가고, 식목일엔 경천 화암사에 갑니다.
춘삼월 매화야 갈증난 봄꽃 보러 간다지만 화암사 얼레지 꽃은 숨겨둔 귀한 것 살짝 훔쳐보듯 보러간답니다.
올핸 다른 이 들에게 얼레지 꽃 보러가라 하고 싶습니다.
나무 밑 나즈막히 봄 먹은 땅 바람 쐬고 머릿결 하늘로 치켜세운 산처녀 보러가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꽃 보러 오가다 범바우골에 들러 주길 바라며 두 번째 작업실 전시회를 열어보았습니다.
이번에도 조영대 선생님과 함께 전시를 합니다.
내가 이곳에 온지 6년째 되었고 삼년 전 좋은 이웃 범바우골에 움틀어 함께 하고 있는 분이십니다.
지난겨울 차 한 잔 나누다 4월 연휴에 사람들 지나다 눈치보고 들리게 하는 것보다 편안하게 문 열어 놓고 누구나 드나들게 하자고 생각을 모았습니다.
조영대 선생님께서는 작업실을 정리하여 회화위주로 전시를 하고 최영문은 작업실엔 평면을 앞마당엔 설치 작품을 전시합니다.
조선생님께서는 요즘 그림에서 새로운 기쁨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림에 깊은 향기가 묻어납니다.
자연이 좋아 이곳으로 오셨고, 매일 자연을 체감하다 이제는 한 몸 되어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빛으로 보이고 눈으로 인식함을 이미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림 속의 형태는 맘속에 침잠되어 차곡히 쌓인 것을 다시 가다듬어 나타내고 있고, 화면 속의 색채는 흙 맛 알고 숨쉬는 생명들의 혈색입니다.
그 깊은 맛을 나는 좋아합니다.
일곱 번째 최영문 개인전의 테마는 『산 그리메, 물 그리메』입니다. ‘그리메’는 그림자의 옛말이면서 ‘그린다’는 어감과 비슷하여 산과 물을 마음에 담고 화면에 그리고자 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현대인이 보는 산천과 옛사람들이 보았던 산천은 분명 다를 것 이라고...
카메라 렌즈에서 빛의 과학으로 인식되어 손끝 셔터로 담겨지는 그런 산수가 아닌, 주마간산 자동차 핸들잡고 이정표보다 간간이 보는 그런 풍경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있을거라고...
체온이 느껴지는 포근한 산, 생명의 근원으로 느껴지는 젖줄 같은 물, 그리하여 들숨날숨 소리를 듣고, 요동치는 맥박을 감지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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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산의 그늘아래 살면서 산을 그늘지게 하고 물의 그늘아래 살면서 물을 그늘지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해마다 우수 경칩 오기 전 집 주변 복숭아밭 가지치기를 합니다.
초여름 알이 굵고 색이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항상 그 탐스러운 열매 맺힘에 뿌듯해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남은 가지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해준 잘려진 가지를 생각해볼 아량은 있어야겠습니다.
앞마당 설치작업은 잘려진 복숭아나무 가지를 이용해 그림 속 형상을 입체로 표현했습니다.
버려진 가지 꽃피는 날, 아이들 소리 가득한 전시장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전시 : 2004. 4. 3(토) 오후3시 -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