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밤 하얗게 세우던 젊은 시절의 라디오

가만히 눈을 감고 지난 세월을 돌아다 보면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허망할 뿐이다. 절대 그럴 일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면 부정할 수록 느끼게 되는 허탈감은 참 많다. 나이를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산다는 것은 체워지지 않는 욕구로 인해 고틍을 받게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 대상이야 세월에 따라 달라지지만 원초적인 원인은 모두가 같다. 되돌아보면 가난으로 인해 겪거야 하였던 아픔은 정말 컸다. 가슴 속에 용솟음 치고 있던 야망은 크고도 광대하기만 하였는 데 냉엄한 현실은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였다.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는 욕구는 결국 불만이 되어 포효하곤 하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 뿐이었다. 낮 동안에 꿈을 이루기 위하여 몸무림치다가 밤이 되면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하였다는 아픔으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제는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젊음은 그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일은 일상사가 되었다. 잠 못이루는 영혼에 위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라디오였다. 텔레비젼은 언감생심 가질 수 없는 사치스러운 물건이었다. 만약 라디오가 없었다면 그 긴긴 밤을 어떻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인지 끔찍하다. 정말 라디오에게 감사한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동병상린의 마음으로 방황하던 길 잃은 영혼들이 서로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30 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잊을 수가 없다. 길고도 긴 밤을 황 진이는 잘라내어 내 님이 오시면 다시 펼칠단고 하였던가. 그 때의 마음을 생각하면 황진이의 그런 마음과 같았다. 그 때의 라디오의 소리는 감미로움 그 자체였다.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해주는 약이었고 좌절과 실망으로 주저앉은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친구였다. 이제는 그렇게 하라고 하여도 할 수 없는 신체적인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그렇지 않다. 아직도 젊은 피가 흐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세월의 바쁨에 밀려 멀어진 라디오를 다시 가깝게 하고 있다.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텔레비젼보다는 라디오가 훨씬 더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출근을 하며 전주 엠비시 에프 엠 김 차동의 모닝쇼를 들으며 출근을 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데 큰 활력소가 된다. 그래서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경이로운 하루를 만들어가는 김 차동의 모닝쇼에 거듭 감사하면서 맺는다.<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