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해주실 책은?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라는 부제를 지닌 <산복 빨래방>이라는 특별한 책을 소개합니다.
산이 많은 지형의 특성상 부산에는 산허리에 만들어진 도로가 많습니다. 이를 '산복도로'라 부르는데, 다수에게 익히 알려진 감천문화마을과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이 산복도로를 대표하는 마을입니다.
산복도로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이루며 마을이 만들어졌고, 산업화 시대에는 노동자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돼 줬는데요. 지형과 역사를 통해 탄생한 산복도로야말로 진짜 부산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풍경입니다. 그 까마득한 언덕 위 산복도로 마을 한복판에 조금 이상한 청년들이 마을의 정적을 깼습니다. 돈은 받지 않는데 공짜는 아닌 빨래방, 바로 2-30대 부산일보 기자들이 만든 ‘산복빨래방’입니다.
저자들은 지역 언론의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세탁비 대신 이야기를 받는 산복빨래방’ 아이디어를 내고 지난해 5월부터 6개월간 가게를 운영했다고 합니다.
단칸방 2칸을 개조한 3평 남짓한 공간에서 23kg 세탁기 2대와 건조기 2대로 했던 빨래만 총 504개.
귀한 손주가 오기 전 빨아야 하는 이불부터 시집올 때 혼수로 가져온 카펫까지, 저자들은 가지각색 사연이 담긴 빨랫감을받으며 주민들의 속 깊은 사연과 생생한 일상을 듣고 기록했습니다.
기자들은 산복도로를 도시재생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많은 시선이 께름칙했다고 합니다. 현장을 누비다 보니 예산 수백억원을 투입한 건물이 생겨도 주민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다고 합니다. 대형 시설을 짓고 낙후된 환경을 바꿔관광지로 발전시키는 그동안의 공식이 완벽한 해답은 아닐 수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3평 남짓한 산복도로 빈집을 빨래방으로 만들기로 했는데요. 누구나 덮는 이불이나 옷가지를 깨끗이 빨아주는 게실생활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대신 빨래방을 찾는 부산 역사의 산증인들에게 돈보다 소중한 이야기를 받기로 했습니다. 수백억 원대 건물보다 더 가치 있는 보석 같은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다고 생각한 셈입니다.
책 반응은 어땠나요?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과 함께 한국기자상, 한국신문상 등 언론상 6관왕을 차지했습니다.
책에는 지역 언론인이 가진 고민과 포부도 담겨 있습니다.
기자들은 신문을 잘 읽지 않는 시대에 가장 ‘부산스럽고’,‘잘할 수 있는 일’을 시도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산복빨래방은 올해 10월31일 문을 닫았습니다.
빨래방은 호천마을 주민협의회에서 맡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