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해주실 책은?
시각장애 언어학자가 전하는 새로운 시각에 관한 이야기, <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이라는 책입니다. 두 살 무렵 양쪽 눈을 잃은 뒤 ‘보지 않음’이 당연해진 일본의 언어학자가 신문과 라디오에서 오랫동안 써내려간 ‘목소리’를 한데 모은 책입니다.
이 책은 눈을 사로잡는 온갖 것들로 가득하고 ‘보다’와 ‘안다’가 같은 말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보지 않고 보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배려와 보호 대상으로만 그려지던 장애인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이었고요, 그간 읽었던 에세이 중 손에 꼽을 만큼 흥미로웠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만지면 안 돼.” 저자가 어릴 적 누나의 학예회 미술작품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입니다. 만지지 말라는 말을 들은 그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만지지 않고 볼 수 있는 걸까. 두 살 때 소아암의 일종인 망막아세포종을 앓아 두 눈을 잃은 저자에게 시력이란 초능력처럼 느껴졌답니다. 만지지 않고 세상을 볼 수 있다니. 책에는 세상을 눈이 아니라 만져서 보고, 귀로 들어서 보고, 맛으로 보고, 냄새로 바라봐 온 저자의 여정이 시종일관 유쾌하게 담겨 있습니다.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다면?
요즘 ‘배리어프리’ 정책이 곳곳에서 활발하죠. 배리어 프리란 사회적 약자들의 생활에 지장을 주는 물리적·심리적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인데요. 그런데 이 책은 장애인을 보호받고 배려받아야 하는 존재로만 바라보는 생각과 편견을 부드럽게 깨뜨립니다.
특히 저자는 소통이란 알맹이가 없는 기계적 배리어프리가 허울에 불과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열차로 통근하는 저자가 환승 시간이 짧고 배차 간격이 긴 역에서 서두르고 싶어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역무원에게 제지당했던 경험, 다른 승객들과 달리 10분 전부터 준비하도록 채근당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배리어프리 정책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네요. 작가소개 해 주시죠.
일본의 시각장애인 언어학자이자 칼럼니스트 ‘호리코시 요시하루‘는 두 살 무렵에 유전율이 높은 소아암의 일종인 ‘망막아세포종’을 앓고 두 눈을 적출했습니다.
자신과 같은 질병으로 한쪽 눈을 잃고 2021년 도쿄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딴 마라톤 선수 호리코시 다다시의 아버지로도 유명합니다.
섭외를 거절하려고 “5분 정도는 내 맘대로 말하고 싶다”고 둘러댄 것이 받아들여지는 바람에 10년 가까이 NHK라디오<시각장애인 여러분에게>에 출연했습니다. 이때 쏟아낸 이야기들은 청취자들의 호평을 얻으며 인기를 끌었고, 100년이상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의 점자신문 <점자 마이니치>에도 9년 가까이 칼럼을 연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