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해주실 책은?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요, 윤이형 작가의 <개인적 기억>이라는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일어난 거의 모든 일을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을 안고 살아가는 남자입니다. 과잉기억증후군이란 삶에서 겪은 사건과 경험에 관한 기억을 과도하게 가지고 있는 상태로, 일종의 기억장애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기억을 통제하는 훈련과 약을 통해 평범한 기억력을 갖게 된 주인공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게스트하우스의 컴퓨터가 다운돼 손님 명단을 찾을 수 없는 큰일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주인공은 쉰 명이 넘는 투숙객들의 신상, 방 번호, 체크인 날짜 하나하나까지 기억하고 일을 깔끔하게 처리합니다. 주변에선 TV 출연까지 권할 정도였죠.
그러던 어느 날 이 게스트하우스에 장기투숙을 하고 있던 손님과 우연히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서 특별한 점은 모든 것을 ‘기억’하던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뒤론 무언가를 하나씩 잊게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여자친구가 질문했던 상황은 기억이 나는데, 자기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주인공 입장에선 난생처음 겪는 일인 거죠.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망각’한다는 거네요. 설정이 독특합니다.
맞습니다. 이러한 기억과 망각에 관한 설정은 이 책에 자주 언급되는 어떤 소설과 연결되는데요. 말에서 떨어진 낙마사고 후 비범한 기억력을 얻게 된 시골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기억의 천재 푸네스>입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단편소설이죠. <기억의 천재 푸네스>가 이 책에서 왜 중요하게 언급되냐면, 주인공이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문득 이 책을 필사하기 시작하거든요. 한 자 한 자 받아적으면서 20년 전 사랑했던 그녀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소설은 이어집니다.
‘사랑은 기억일까. 망각일까.’ 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다시 기억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까지 꼭 읽어보겠습니다. 책을 펼쳐서 윤이형 작가 이력을 보면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소설가로 활동했다’고 되어 있는데요. ‘
활동하고 있다’가 아닌 ‘활동했다’는 과거형이 마음에 걸립니다. 혹시 이제 작품을 안 쓰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윤이형 작가는 2020년 <붕대감기>라는 소설 이후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였던 윤이형 작가가 해당 출판사의 불공정 계약 관행을 비판하며 절필을 선언했기 때문인데요.
이후 출판사는 논란 한 달 만에, 문제가 됐던 저작권 독소조항을 삭제하고 사과한 바 있습니다.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최진영 작가는 “계약서의 표본이라고 할 정도로 깨끗하고 단정했다"며 “누군가 먼저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어 바꿔놓은 밥상을 받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