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화) 임주아작가의 책방에 가다

오늘 소개해주실 책은?

제가 <책방에 가다> 코너지기를 맡은 지 어느덧 4년이 되었는데요. 오늘만큼 책을 고르기 힘든 날은 없었던 것 같아요. 

집의 책장에서, 서점의 서가 앞에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문득 이 책이 떠올랐는데요. 바로, 한강 작가의 <흰>이라는 소설입니다. 

6년 전 출간된 이 작품은 “애도와 부활, 인간 영혼의 강인함에 대한 책”이라는 평을 받으면서 맨부커상 최종후보작에 오른 바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로 이 상의 주인공이 된 데 이어 2년 뒤에 또 한번 최종작으로 지명 받은 터라 큰 관심을 받은 작품이죠.

그런데 이 책은 소설이지만 <채식주의자>처럼 보편적인 소설 장르의 범주에 두기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 반응이 많습니다. 

펼쳐보면, 예순 다섯 편의 글이 시처럼 짧게 짧게 들어있거든요. 내용 역시 굉장히 시적이라서 더 그렇고요.

 

시 같은 소설,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해지네요.  

은행나무에서 은행잎 떨어지듯 아주 자연스럽게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문체라는 것이 작가의 지문과도 같아서, 소설이든 시든 그 문양이 드러나게 되니까요. 짧지만 여운 강한 이야기들이 담긴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작가가 쓴 목록은 아기 이불을 뜻하는 ‘강보’부터, ‘배내옷’ ‘서리’ ‘흰나비’ ‘수의’ ‘작별’까지 온통 흰 것들입니다. 

예순 다섯 개의 이 목록을 차례로 따라가 보면, 결국 이 소설은 어떤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앳된 스물세 살 어머니의 품에서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친언니입니다. 

어머니는 “달떡처럼 희고 어여뻤던 아기”라고 종종 이야기하지만, 언니의 얼굴을 알 리 없는 주인공에게는 한없이 궁금하고 미안한 당신으로 남아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지금 나는 이 삶을 살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대목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궁극적으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단 한 사람을 애도하는 마음이 ‘흰 목록’으로 압축돼 세상에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떠난 이가 남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는 남은 자의 필사적인 노력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강 작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970년 겨울에 태어난 한강 작가는 등단 후 30년 간 ‘상실의 고통을 안고 사는 이들이 마주한 한줄기 빛’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며 많은 작품을 써왔습니다. 

지난해 출간한 최근작으로 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그린 <작별하지 않는다>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