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0(화) 김근혜작가의 책방에 가다

오늘 소개해주실 책은?

여름이 끝난 듯싶었는데 며칠 동안 32-3도를 웃도는 날씨가 연이어 이어지네요. 

그러나 곧 거짓말처럼 찬바람이 불고 가을이 오겠죠! 긴 긴 여름이 가을의 뒷면으로 사라진다니 어쩐지 파릇파릇한 청춘이 저무는 느낌도 드는 데요 그래서 오늘은 마치 생의 마지막 여름을 보내는 마음으로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 라는 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여름의 빌라’는 백수린 작가가 2016년부터 2020년도에 집필한 단편집을 모아 놓은 소설집입니다. <시간의 궤적> <여름의 빌라> <고요한 사건> <폭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흑설탕 캔디> <아주 잠깐 동안에>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모두 8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백수린 작가 특유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함께 관계, 여성, 사랑, 지나간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8편의 작품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표제작 <여름의 빌라>입니다. 

‘나’는 독일에서 만난 베레나 부부와 함께 캄보디아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여름의 빌라’라는 곳에 머물며 추억을 공유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러하듯 살아온 세월의 간극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이들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의식을 매몰되어 극복할 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베레나’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습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그에 편지를 읽고 ‘나’는 그의 마지막 기억이 부디 아름다운 캄보디아의 

풍경이길 바란다는 답장을 씁니다. <여름의 빌라>에 나오는 문장을 통해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가를 짐작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내용과 구절이 인상 깊었는지? 

‘이것만큼은 당신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신의 기억이 소멸되는 것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순리라고 한다면 나는 폐허 위에 끝까지 살아남은 창공을 향해 푸르게 뻗어나가는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이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딸이 낳은 그 어린 딸이 내게 그렇게 말한 후 환하게 웃는 장면이요. p.71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치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한 기분이 들 거예요. 

그리고 관계의 힘은 곧 공간이 주는 힘이라는 것도 알게 될 거예요. 어떤 공간에서 만나냐에 따라 추억의 색이 달라지니까요. 공간은 그렇게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합니다. 

그때 주고받은 말들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들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p. 12 깨닫게 될 거예요.

 

작가소개를 해 주신다면? 

백수린 작가는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등을 통해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대체 불가능한 아름다운 문장과 섬세한 플롯으로 문단과 독자의 신뢰를 한몸에 

받아왔습니다. 현대문학상(「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문지문학상(「여름의 빌라」), 젊은작가상(「고요한 사건」 「시간의 궤적」) 수상작을 한 권에 만나볼 수 있는 『여름의 빌라』는 

“성급한 판단을 유보한 채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직시하고 찬찬히 기록” 한 작가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책을 읽다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지나온 인연과 사랑과 만남에 대해 다시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런 틈에 가을이 성큼 다가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