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타이거우즈가 미국에서 한국산 고급차를 타고 가다 전복됐지만 목숨은 건졌다는 기사가 화제. 에어백이 많아서 그랬다는 얘기가 있어서 에어백 이야기를 해볼까 함.
2. 그런데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서요?
헤트릭 또한 미 해군에서 어뢰 개발을 담당했던 경험자. 특히 그는 어뢰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기 압축력을 높이는데 매진. 압력이 높아질수록 스크류를 돌리는 힘도 강해져 속도가 올랐고 그래야 적이 어뢰를 탐지하기 전 목표물의 타격 가능성이 높아짐. 한 마디로 어뢰 속도 높이기가 에어백 발명과 연결된 셈.
3. 하지만 실망했죠?
GM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자동차 회사에게 에어백은 안전 품목이 아니라 원가 상승만 가져오는 불필요한 장치로 인식. 게다가 개인에 대한 특허료 지급은 엔지니어 집단인 기업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일. 실제 최초의 상업용 에어백이 적용된 시점이 헤트릭의 특허 만료 기간이 지난 1971년이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
4. 그럼 누가 사업화를 한건가
상용화가 어렵던 1967년, 에어백의 사업화 가능성에 확신을 가진 인물은 사업가이자 발명가였던 알렌 K. 브리드(Allen K. Breed). 그는 에어백이 널리 보급되려면 공기주머니의 팽창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 그래서 작은 튜브 속에 넣은 쇠구슬의 움직임을 충격으로 감지하는 방법을 생각. 평상시 구슬이 자석에 붙어 있다가 충격으로 떨어지면 에어백을 팽창시키는 원리. 구슬이 튜브 안에 있다는 의미에서 ‘BIT(Ball-In-Tube)’ 센서로 불리는 등 당시로선 획기적인 개선이었지만 마찬가지로 자동차회사의 반응은 미지근. 안전 규제도 없고 안전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높지 않았으니 안전을 위해 자동차회사가 스스로 비용 부담을 자처할 필요가 없었던 탓.
5.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그럼에도 앨런 브리드는 압축공기로 주머니를 부풀리는 것을 대신해 아지드나트륨을 기폭제로 활용해 팽창 속도를 더욱 높였고 결국 미국 내 자동차회사 가운데 처음으로 크라이슬러가 에어백을 받아들였고 미국 정부가 관용차 구매 조건으로 에어백 적용을 내걸자 GM과 포드도 앞다퉈 적용. 특히 GM은 크라이슬러가 상용차에 적용한 것과 달리 미국 내에서 승용차 최초로 올즈모빌 ‘토로나도’에 에어백을 적용해 시선을 끌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