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9(화) 임주아 작가의 책방에 가다

오늘 소개해주실 책은?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살인의 추억, 왕의 남자, 웰컴투 동막골, 클로저, 그을린 사랑, 문라이트……. 이 작품들의 공통점이 뭔지 눈치채셨을까요?

바로 ‘희곡’이 원작으로 만든 영화 목록입니다. 아주 오래된 문학 장르인 희곡은 공연을 목적으로 하는 연극 대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희곡을 책으로 읽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희곡이라는 형식이 전공자가 아니라면 다가가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실은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든 것도 희곡입니다. 

특히 최기우 극작가의 <조선의 여자>라는 희곡집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전북연극제와 대한민국연극제에서 7개의 상을 휩쓸며 ‘희곡의 힘’을 보여준 작품인데요요. ㈜한국극작가협회가 주관하는 ‘한국희곡명작선’에도 선정돼 최근 단일 희곡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최기우 극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세상과 이별하는 할머니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더 늦어지면 안되겠다” 싶어 집필하게 됐다고 계기를 밝혔는데요. 

여기서 할머니들이란 어떤 분들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책을 펼치면 1943년 전주 인근 마을의 송씨 가족의 이야기가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1940년대는 태평양 전쟁과 창씨개명, 신사참배, 미군정 등 해방 전후의 시기잖아요. 집집마다 젊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내몰리던 비극적인 때이고요. 

 

이 작품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형부가 처제를 위안부로 끌려가게 하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신문을 보면 드문 일은 아닙니다. 

작가는 “작품을 쓰기 위해 위안부 할머니들 구술 자료를 전부 찾아 읽었는데, 실제로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이야기가 무수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죠.

 

가족이 가족을 위안부로 넘기고만 무책임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들여다보면 한 가정의 딸이었던 지극한 평범한 여성이 어떻게 국가의 폭력으로 희생되고 그 삶이 무너지는지 고발하고 날카롭게 조명하는 작품이었고요. 특히 이 작품의 무대가 우리 지역이라 더 공감하고 상상하며 읽었습니다. 

말씨에서 묻어나는 전북 지역 정서, 절제된 구성 등이 좋았습니다. 이 작품이 희곡 형식이라 더 생생하게 읽혔습니다. 

연극제에 직접 가서 이 공연을 직접 보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웠고요. 

 

최기우작가는 1973년 전주에서 태어나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이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는데요. 

1년 뒤 후배의 부탁으로 우연히 희곡을 쓰게되면서 극작가로 변신하게 됩니다. <귀싸대기를 쳐라>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연극, 창극, 뮤지컬 등 100여 편의 작품을 썼고요. 

현재 청년시절부터 몸담았던 최명희문학관에서 관장으로 활동하며 치열하게 희곡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평생 한번도 받기 힘들다는 대한민국연극제 희곡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