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화) 책방에 가다

11월도 어느덧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가을이 지나가기 전에 책 한 권 진득하게 읽어본 적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지 한번 들어볼까요?

주말에 전주 천변을 걸었는데 억새가 너무 아름답게 잘 자랐더라구요. 

갑자기 봄처럼 날씨가 포근해져서 산책하는데 아주 좋았고, 물결 위에 떠다니는 오리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요즘 사람이 덜 모이는 산책길에서 혼자 유유자적 산책하는 분들을 길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요. 

오늘은 산책자의 마음으로 이 계절을 나고 있는 우리 청취자님들을 위해서 따끈따끈한 신간 시집을 들고 왔습니다. 제목은 <산책하는 사람에게>이고요, 안태운 시인이 썼습니다.

 

시집 제목도 이 계절에 잘 어울리네요. 이 시인이 우리 지역 출신이라고 들었어요.

네. 전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전주 토박이 시인인데요. 초중고는 전주에서 졸업을 했고,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 서울에 정착했죠. 

그런데 평일에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주말에는 본가가 있는 전주로 내려와 산책을 하면서 시를 쓰고 있습니다. 

올해 서른다섯 살, 젊은 시인이고요. 2014년에 등단해서, 2년 뒤에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첫 시집을 내고 큰 주목을 받은 작가입니다. 

당시에 “단단하면서도 독특”한 문장으로 “장면의 전환과 시적인 도약”을 일으킨다는 심사평을 받았죠. 

이번 시집은 그로부터 4년 만의 신작이고요. 시집을 펼치면 총 4부로 나눠져있고 마흔세편의 시가 들어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나고 자란 젊은 작가들의 신간은 어쩐지 더 반가운 것 같습니다. 김수영 문학상 수상 작가의 신작이라 더 기대도 되고요. 이 시집엔 어떤 시들이 들어있나요?

산책하는 사람에게, 라는 시집 제목처럼 산책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어떤 조용조용한 말들이 마치 하나의 띠를 이루듯 이어져 있습니다. 

산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느낌도 들고요. 실은 누구에게 보낸다는 말은 딱히 없지만, 읽다 보면 산책하면서 지나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발신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시들이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시를 읽기 전에 시에는 꼭 답이 숨어 있어야 할 것 같고, 감동과 눈물이 깃들어있어야 할 것처럼 기대를 하시는데, 

실은 요즘 많은 젊은 현대시들은 어떤 선언이나 다짐이나 미래를 말하지 않고, 지금 현실을 살아가면서 느낀 어떤 낯선 감각, 이질적인 감정 이런 것들에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이 시집을 읽을 때는, 시에 어떤 답이 있다고 기대하지 말고 문장이 이끄는대로 같이 산책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 됩니다. 산책이라는 것이 원래 띄엄띄엄 물 흐르듯이 하는 것이니까요.

 

이 시집 시들 중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았나요?

시를 읽으면서 저는 시인이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의 실타래 뭉치가, 홀로 산책하면서 스르르 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의 상황도 굉장히 간결합니다. 아침 빈방에 비춰진 빛을 보면서 느낀 나의 감정, 눈이 녹고 있는 호수를 바라보며 말 없는 사람의 모습, 

숲으로 들어갔다가 더 깊숙이 들어간 사람이 느낀 낯선 기분, 같은 잔잔한 것들입니다. 분명히 많이 걷고 많이 본 시인만이 관찰할 수 있는 독특한 반짝임이 있습니다.

'오솔길을 걷다가 숲이 나왔고, 숲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숲에서 내가 나왔듯이.' 이런 구절이 주는 조용한 반전이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