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해주실 책은?
가수 장기하가 자신의 음악과 닮은 책을 출간했습니다. <상관 없는 거 아닌가?>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입니다.
그는 책을 쓴 계기에 대해 "2018년부터 쉬고 놀았는데 말만으로는 자세히 표현되지 않는 생각을 글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년간 일주일에 한꼭지씩 쓰자는 결심으로 글쓰기에 집중했고 절반쯤 성공했다"고 말했습니다.
장기하하면 허를 찌르는 가사로 유명한데요. 2008년 '싸구려 커피'로 출발해 2018년 '그건 니 생각이고' 등 위트 있는 음악을 내놨습니다.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면은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
장기하라는 이름 세 글자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린 곡 ‘싸구려 커피’에는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라는 멜로디 뒤로 이런 ‘중간 랩’이 펼쳐집니다.
장기하는 이 부분이 장기하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하는데요. 그런데 이 중간 랩은 그 가사처럼 정말 “멍하니 그냥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탄생했습니다.
군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창가, 창밖으로는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고 무심히 그걸 바라보다가 이윽고 보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죠.
그 멍한 상태에서 이런저런 단어들이 알아서 모여들었고, 박자에 달라붙었습이다. 장기하는 이후 이 ‘멍한 상태’를 창작의 모범 사례로 삼고 새로운 작곡에 적용해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버릇을 갖게 됐습이다. 뭐든 추구하고 노력하면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어떤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지?
장기하는 밴드 산울림의 노래 ‘아니 벌써’에 대해 “연주 실력이 그야말로 형편없다. 일단 악기 연주들 간의 박자가 전혀 안 맞는다. 직업 음악인들만 감지할 수 있는 미세한 오류가 아니다.
대부분의 프로 스튜디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평합니다. 그런데 이는 혹평이 아닙니다. 그는 ‘아니 벌써’가 명곡이 된 이유가 그런 오류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뉘앙스 덕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난해 단 하나의 노래도 만들지 않기로 결심하고 일부러 쉬었다는 장기하는 올해 첫날 부푼 마음으로 작업실 책상에 앉아 좌절하고야 말았습니다. 기타면 기타, 건반이면 건반, 프로그래밍이면 프로그래밍,
그 무엇이 됐든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문득 떠올린 음악은 산울림의 ‘아니 벌써’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그가 작곡한 다른 노래들 역시 음악 실력이 아닌 창의성 하나로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좀 열등하다 해도 별로 상관없고,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장기하가 살면서 얻은 삶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책 제목, 장기하의 이 말은 어쩐지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