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해주실 책은?
은유 작가의 ‘올드걸의 시집’이라는 책입니다. 은유 작가의 에세이에 다른 시인의 시가 한편씩 곁들여져있는 형식의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구하기가 되게 힘들었었어요. 몇 년 간 절판됐었거든요. 그래서 정가의 두세 배 가격으로 중고 거래될 만큼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복간 요청이 꾸준했죠.
그래서 5년 만에 새로운 표지를 들고 다시 독자 앞에 나오게 됐습니다.
이 책은 은유작가가 2008년에 개인 블로그에 ‘올드걸의 시집’이란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에세이와 함께 시를 덧대어 한 편 두 편 글을 올린 글들이 묶여있는데요.
48편의 시와 에세이가 수록돼있습니다. 작가는 “돈을 벌거나 책을 내려고 쓴 게 아니라 속을 달래려고 일이 버거워서 쓴 글들”이라면서 “자기연민이 과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에 가장 고통없이 썼던 글”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책을 얼마 전에 지인한테 선물받고 알게 됐는데, 집 식탁에서 이 책을 하루종일 읽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지인한테 책 읽은 후기를 전해줬어요, 눈물이 철철 났다고.
어떤 내용이길래!
한 여자가 돈·권력·자식을 삶의 주된 동기로 삼지 않고 늘 회의하고 배우는 주체로 설 수 있게 눈물나게 노력하는 삶. 워킹맘으로 프리랜서로 살아가며 남편과 자식의 삶을 보듬고 챙기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또 자신을 지키며 일구는 이야기. 가족들 식사시간이 끝나면 식탁을 치우고 그곳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 한 토막이 끝나면 마치 연극배우처럼 나타나는 한편의 시가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기억에 남는 구절들?
“몇 해 전 남편과의 불화 국면에서 식탁은 종종 눈물의 씨앗이 되었다. “밥 먹는 곳에 책 좀 늘어놓지 말라”는 그의 말이 그렇게 싸늘하고 서러울 수가 없었다.
식탁이면서 식탁이 아니기도 했던 모호함이 나에겐 숨구멍이었지만, 정리벽이 있는 그에겐 매끈히 정리해야 할 간척지였다. ‘식탁의 난’은 남편이 내 생일선물로 책상을 사 주면서 종료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다시 묻는다. 이 동그란 식탁을 언제까지 이렇게 두려 하냐고. 한층 협조적이고 다감한 어조이지만 울컥했다. 서러움과 서글픔. 어쩌자고 나무토막에 살붙이 같은 정이 들어버렸는지 이 마음을 나는 설명하지 못했다. 최승자 시인의 말대로 “나의 존재를 알리는 데는 이 울음이라는 기호밖에 없”는가. 이 혼돈과 불편, 비합리와 비효율의 상황을 설득할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에는 김선우의 시 <뻘에 울다>가 붙어있습니다. 그 마지막 구절을 읽어볼게요. “시간이 숨구멍처럼 휘는 이곳의 혼돈이 좋아요.”
“… 어머니가 그러더라. 가만히 있으면 뭐 하느냐고, 사람은 ‘나쁜 짓’이라도 해야 한다고, 그래야 하나라도 배울 게 있다고. 와, 그 말을 듣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라. 나는 나이도 젊은데 잔뜩 움츠리고 살았더라고. 항상 방어적이었지 망가지고 실패하고 상처받는 상황에 나를 한 번도 놓아둔 적이 없었던 거지.” 어느 필모의 인생철학, ‘나쁜 짓이라도 하라’는 말이 선배의 생을 등 떠민 것이다. …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게 낫고 그러면서 하나라도 배워야 한다는 믿음. 그 “깨달음의 높은 돛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모진 풍파를 겪으셨을까. … 우리의 철학자 니체-어머니의 말이 쏴아쏴아 파도쳤다. 머뭇거리는 생이여, 늦었다고 생각할 때 재빨리 악행을 저질러라.“
이야기에는 최승자의 시 <이제 가야만 한다>를 덧붙였습니다. “오냐 온몸 온정신으로 이 세상을 관통해보자 /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일 수 없을 때 /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을 수 없는 곳에서 / 혹 내가 피어나리라”
가장 공감 갔던 부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손댈 수가 없을 때면, 나는 책꽂이 앞으로 가서 주저 앉았다. 손에 잡히는 시집을 빼서 시를 읽었다. 정신의 우물가에 앉아 한30분씩 시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기계적으로 일하는 노예가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으면서 나는 나를 연민하고 생을 회의했다. 생이 가하는 폭력과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는 시. 시를 통해 나는 고통과 폐허의 자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법을, 고통과의 연결고리를 간직하는 법을 배웠다.”
저도 시를 왜 쓰기 시작했는가 생각해보면 이런 이유들이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 나를 지그시 눌러주는 돌 같은 게 시였고 시읽기였습니다.
이 책을 꼭 읽어야할 이유?
시가 어렵다고 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시집의 시들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내가 왜 시를 어렵게만 생각했지? 싶은 마음이 들어요. 교과서에서 배운, 왠지 시라고 하면 이래야한다라는 시가 아니다. 자주 읽고 늘 읽는 서정주, 한용운, 김소월이 아니다. 김선우, 최금진, 최승자 같은 현대시인들, 살아있는 자들의 목소리입니다.